본관은 분성(盆城). 자는 주경(周卿), 호는 단계(丹溪). 정조연간에 활동하였다. 시(詩)·서(書)·화(畵)·금(琴)에 모두 뛰어나 사절(四絶)로 일컬어졌던 위항문인(委巷文人)으로 30세에 요절하였다. 조희룡(趙熙龍)은 그를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
“얼굴 모습은 부인과 같고 숨을 내쉬면 난초의 향기와 같다.”, “하늘이 재주를 주는 것은 풍부히 했으나 수명을 주는 것은 인색했다.”고 말했다.
유작으로는 개인소장의 「행려도(行旅圖)」와 「강촌추사도(江村秋事圖)」 등이 전하는데, 짧은 필치와 선염(渲染)이 혼용된 남종화법(南宗畵法)으로 다루어져 있으며, 이유신(李維臣)의 화풍과 유사하다. 『풍요삼선(風謠三選)』에 그의 시가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