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고흥 출신. 1909년 3월 격문을 발하여 의병을 모집, 휘하에 30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3월부터 5월 사이에 흥양군 대강면·남양면·남면·서면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4월에는 사창호곡(社倉毫谷)에서, 8월에는 과역(過驛)에서, 12월에는 유둔만(油屯萬)에서, 1910년 초에는 돌산(突山)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여 다수의 일본군을 사살하고, 돌산전투에서 총상을 입고 붙잡혔다.
1910년 1월 광주지방재판소 목포지부에서 징역 10년형을 언도받고 복역 중, 1912년 12월에 7년으로 감형되었고, 1914년 5월 칙령으로 5년 8개월의 징역이 확정되어 석방되었다.
1986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