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재 ()

김영재
김영재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윤봉길의 의거에 사용할 폭탄을 제작하였으며, 임시정부 주석 경호원, 비서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이칭
이칭
왕영재(王英哉)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11년
사망 연도
1965년
출생지
평안북도 용천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때, 윤봉길의 의거에 사용할 폭탄을 제작하였으며, 임시정부 주석 경호원, 비서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개설

별명은 왕영재(王英哉). 평안북도 용천 출신.

생애 및 활동사항

1931년 상해로 망명, 1932년 1월 상해에서 한인청년당(韓人靑年黨)을 조직하여 항일특무공작활동을 하였다. 같은 해 4월 윤봉길(尹奉吉)의 훙커우공원투탄의거(虹口公園投彈義擧) 때, 윤봉길이 사용한 폭탄제조작업에 참여하였다.

원래 이 폭탄은 한인애국단 단장인 김구(金九)의 부탁을 받은 김홍일(金弘壹)이 상해병공창장(上海兵工廠長) 송식마(宋式馬)와 교섭하여 제조한 일본군의 도시락 및 물통 모양의 폭탄이었는데, 재료가 된 일본군의 물통 및 도시락 10개를 구입하여 제공한 것이다.

1935년 중국 공군에 들어가 1941년까지 근무하면서 항일전쟁에 참전하였고, 1942년부터 1945년까지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김구의 경호원 및 비서로 근무하면서도 계속 대일비밀공작활동을 전개하였다.

상훈과 추모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독립운동사』 6·7(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5)
관련 미디어 (1)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