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때, 대동단에서 활동하며 의친왕 망명 계획에 참여하였고,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 등을 역임하고 군자금 모금 활동을 벌이는 등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개설
생애
활동사항
김용원은 이후 상해로 망명하여 1921년부터 1922년까지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을 역임하였다. 그 뒤 무장활동을 통한 독립의 길을 모색하여 중국의 무관학교에 입학하기도 하였으나 병으로 1924년 귀국하였다. 이후 국내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여 1924년 7월경부터 9월까지 총 38원 50전을 모금하였다고 전한다. 1924년 8월 오근영과 함께 경기도 수원군 수원면 남창리 이규연(李圭淵)의 집으로 들어가 액면가 500원이 적혀있는 조선독립공채를 교부하기도 하였으며, 여러 곳을 다니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하였다.
결국 이러한 사실이 일제에 발각되어 1924년 9월 체포되었다. 징역 2년형을 언도받았으나 병이 재발하여 1925년 1월 7일에 형집행정지처분을 받고 석방되었다. 그러나 출옥 이후에 또다시 군자금모금 등의 활동을 하다가 일경에게 체포되어 수감되고, 건강상의 이유로 다시 석방되는 등 여러 차례의 수감과 병보석을 반복하였다. 1934년 2월 병보석으로 출감하였으나 그해 7월 옥고의 여독으로 결국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강산사실기(剛山事實記)』(유희(柳曦))
-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11·19(국사편찬위원회, 1990·1994)
- 『독립운동사자료집(獨立運動史資料集)』5·12·13(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84)
- 「판결문」(경성지방법원, 1924.11.03.)
- 『애국지사 강산 김용원』(김상기, 경인문화사, 2004)
- 『대동단실기(大同團實記)』(신복룡, 선인, 2003)
- 「강산 김용원의 생애와 독립운동」(김상기, 『한국독립운동사연구』 24,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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