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공조판서, 한성부판윤,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496년(연산군 2) 신용개(申用漑) · 김일손(金馹孫) 등과 함께 사가독서(賜暇讀書: 학문의 진흥을 위해 능력있는 문신들에게 휴가를 주어 독서에 전념하게 하던 제도)한 뒤 전한(典翰)이 되었으며, 춘추관편수관을 겸해 『성종실록(成宗實錄)』 편찬에 참여하였다.
1498년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파직당했다가 1501년 부호군(副護軍)으로 다시 서용되었다. 1504년 성균관대사성에 올랐으나 갑자사화로 다시 좌천되었다. 중종반정 뒤 예조참판 겸 동지경연사(禮曹參判兼同知經筵事)로 승진되었으며, 이어 이조참판 · 호조참판 · 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조광조(趙光祖) 등의 사림파가 득세한 1513년에서 1519년 사이에 지중추부사 · 우참찬, 이조 · 형조 · 예조 · 공조의 판서, 한성부판윤 · 우찬성 등을 역임하면서 현량과(賢良科)의 설치 등 사림파의 개혁 정치에 반대론을 전개하였다.
1518년 찬집청당상(撰集廳堂上)으로 신용개 · 남곤(南袞) 등과 함께 『속동문선(續東文選)』을 편찬해 왕에게 올렸다. 1519년 판중추부사가 되었으며, 남곤 · 심정(沈貞) 등과 함께 기묘사화를 일으켜 조광조 등 사림파를 축출하고 정권을 장악하였다. 그 공로로 원종공신이 되었으며, 우의정을 거쳐 1520년 영의정 겸 세자사(世子師)가 되었다.
항상 청렴결백하고 문장도 잘했으나, 기묘사화를 일으킨 배후 인물로 지목되어 후세에 많은 비난을 받았다.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참고문헌
- 『성종실록(成宗實錄)』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중종실록(中宗實錄)』
- 『허백정집(虛白亭集)』
- 『안락당집(顔樂堂集)』
- 『이락정집(二樂亭集)』
- 『상촌집(象村集)』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연려실기술(國朝人物考)』
- 『대동야승(大東野乘)』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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