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조봉암(曺奉岩)의 부인이었다. 일명은 은곡(隱谷), 마야꼬바. 경상남도 창원 출신.
1925년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사회주의운동과 여성운동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1925년 1월 화요파 공산주의그룹의 여성단체인 경성여자청년동맹 창립대회에서 전형위원 및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같은 해 2월에는 전조선민중운동자대회의 준비위원이 되었다,
1925년 4월에 창립된 고려공산청년회의 중앙위원 후보가 되었다. 1925년 4월 전조선민중운동자대회가 일본경찰에 의해 무산되자 이에 항의해 일어난 적기(赤旗)시위 사건으로 검거되었다. 1928년 말 고려공산청년회의 추천으로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 입학했다. 1930년 화요파의 조선공산당재조직준비위원회 사건으로 수배되었으나 소재불명으로 기소중지되었다.
1931년 코민테른 동양부의 지시로 귀국하고 김복만(金福萬)과 재혼했다. 1931년 8월 태평양노동조합 계열의 활동가들과 함께 활동하던 중 일본경찰에 검거되어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해방 후에는 1945년 11월에 열린 전국인민위원회 대표자대회에 인천 대표로 참석했으며 같은 해 12월 조선부녀총동맹에 가입했다. 1946년 2월 민주주의민족전선 결성대회에 조선부녀총동맹 대의원으로 참석해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다.
2008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