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광복 이후 전조선민중운동자대회 준비위원, 민주주의민족전선 중앙위원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 독립운동가.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925년 4월에 창립된 고려공산청년회의 중앙위원 후보가 되었다. 1925년 4월 전조선민중운동자대회가 일본경찰에 의해 무산되자 이에 항의해 일어난 적기(赤旗)시위 사건으로 검거되었다. 1928년 말 고려공산청년회의 추천으로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 입학했다. 1930년 화요파의 조선공산당재조직준비위원회 사건으로 수배되었으나 소재불명으로 기소중지되었다.
1931년 코민테른 동양부의 지시로 귀국하고 김복만(金福萬)과 재혼했다. 1931년 8월 태평양노동조합 계열의 활동가들과 함께 활동하던 중 일본경찰에 검거되어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해방 후에는 1945년 11월에 열린 전국인민위원회 대표자대회에 인천 대표로 참석했으며 같은 해 12월 조선부녀총동맹에 가입했다. 1946년 2월 민주주의민족전선 결성대회에 조선부녀총동맹 대의원으로 참석해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한국사회주의운동 인명사전』(강만길·성대경 엮음, 창작과 비평사, 1996)
- 『남로당 연구』Ⅲ(김남식 엮음, 돌베개, 1988)
- 『한국공산주의운동사』2(김준엽·김창순, 청계연구소, 1986)
- 『한국공산주의운동사 자료편』Ⅰ·Ⅱ(김준엽·김창순 편, 고려대학교출판부, 1979·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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