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우

  • 예술·체육
  • 인물
  • 일제강점기
  • 현대
일제강점기 때, 임시의정원 강원도대표의원 등을 역임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하였으며, 「묵죽도」·「죽석도」 등을 그린 서화가·독립운동가.
이칭
  • 금강산인(金剛山人), 일주(一洲)
인물/근현대 인물
  • 본관강릉(江陵)
  • 사망 연도1950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83년(고종 20)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홍선표 (홍익대학교 박물관, 회화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허심풍덕 / 김진우 미디어 정보

허심풍덕 / 김진우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때, 임시의정원 강원도대표의원 등을 역임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하였으며, 「묵죽도」·「죽석도」 등을 그린 서화가·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강릉(江陵). 호는 일주(一洲) 또는 금강산인(金剛山人). 의암 유인석(柳麟錫)의 제자이다.

활동사항

1918년 2월 21일 『매일신보』에 서화미술회(書畵美術會)에서 공부중이라고 그의 묵죽(墨竹)과 함께 그가 소개되어 있으나, 김규진(金圭鎭)이 개설했던 서화연구회(書畵硏究會)에서 그림 수업을 받고 이병직(李秉直)과 함께 그해 졸업하였다.

사군자 중에서도 특히 대나무를 잘 그렸다. 유작으로 조선 말기의 전통을 따라 1918년에 그린 「묵죽도」(개인 소장)와 「죽석도(竹石圖)」(간송미술관 소장) 등이 전한다.

1919년 중국으로 건너가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정원 강원도대표 의원을 지냈으며, 1921년 귀국하여 독립운동을 펼치다 붙잡혀 3년 징역형을 겪었다. 이 때 그의 묵죽은 일제에 대한 적개심으로 창칼같은 기개와 예리함을 지닌 특징을 보여주기 시작했으며, 스스로 감옥에서 그림을 자득했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묵죽은 최고로 평가받았다.

1946년 대동한묵회(大東翰墨會)에 참여하기도 했다. 일제의 패망이 다가오자 여운형 등과 더불어건국동맹(建國同盟)을 결성하는 등 독립지사였으나 해방후 한국전쟁 중이던 1950년 서대문형무소에 수감중 안타깝게 사망했다.

상훈과 추모

독립운동의 공적을 인정받아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 『간송문화』11 사군자(한국민족미술연구소, 1976)

  • - 『한국근대미술산고』(이구열, 을유문화사, 1972)

  • - 『한국회화대관』(유복렬 편, 문교원,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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