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 채색 지도가 첨부된 필사본. 책머리에 수록된 지도에는 면(面)과 도로, 교량, 산천, 절, 누정, 고개, 봉수, 도서, 아사(衙舍), 향교, 제언 등이 그려져 있어 김포 전역을 일목요연하게 조망할 수 있으나 그다지 정교하지는 않다.
내용 구성은 방리(坊里 : 八面四十三里戶口付), 도로(道路), 건치연혁(建置沿革), 군명(郡名), 형승(形勝), 성지(城池 : 無), 관직(官職), 산천(山川), 성씨(姓氏), 풍속(風俗), 능침(陵寢), 단묘(壇廟), 공해(公廨), 제언(堤堰), 창고(倉庫), 물산(物産), 교량(橋梁), 역원(驛院:無), 목장(牧場), 관애(官阨 : 無), 봉수(熢燧), 누정(樓亭), 사찰(寺刹), 고적(古跡), 진보(鎭堡 : 無), 인물(人物), 수전(水田), 진공(進貢), 조적(糶糴), 전세(田稅), 대동(大同), 균역(均役), 봉룸(俸廩), 군병(軍兵), 사환미(社還米) 등으로 되어 있다.
당시 중앙에서 1개월 동안에 읍지를 만들어 올리도록 하였기 때문에 이전 읍지를 바탕으로 전사한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진공, 조적, 봉름, 군병 등의 항목 끝에 1894년 이후 이들 내용이 폐지되었음을 기록하여 놓아 부분적으로 1894∼1895년에 이루어진 지방 제도와 재정의 개정 내용을 살필 수 있다.
건치연혁조에는 인조의 아버지로 추존된 원종(元宗)과 그의 비 인헌왕후(仁獻王后)의 능인 장릉(章陵)을 김포군의 읍치로 이장함에 따라, 군의 중심지를 옮기고 현에서 군으로 승격되었음을 밝혀 놓았다.
방리조에는 면명(面名), 소속이수(所屬里數), 이명(里名) 등과 호구가 기록되었는데, 호구는 원호와 통수, 남녀 인구수 등이 있고 남녀 인구 수를 장, 노, 약으로 연령을 구분하여 기록한 점이 특징이다.
책끝에는 장윤환(張允煥)의 서명과 김포군수의 도장이 찍혀 있다. 규장각 도서에 있다. 이 밖에 1842년에 편찬한 ≪경기지≫와 1871년에 편찬된 ≪경기읍지≫에 수록된 <김포군읍지>가 규장각 도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