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

근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궁내부특진관, 비서원경, 사직서제조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윤교(允敎)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48년(헌종 14)
사망 연도
미상
본관
광산(光山)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궁내부특진관, 비서원경, 사직서제조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윤교(允敎). 김영수(金永壽)의 아들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74년(고종 11)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홍문관교리·수찬, 우부승지를 거쳐 1885년 이조참의가 되었다.

1886년 성균관대사성 등을 거쳐 1890년 안동부사로 있을 때 경상남도 함창에서 현감의 탐학으로 인하여 민란이 일어나자 안핵사로 파견되었다.

1891년 다시 이조참의를 거쳐, 1894년 6월 갑오개혁을 추진한 김홍집내각(金弘集內閣)의 참의내무부사(參議內務府事)를 지냈으며, 같은 해 10월 의정부도헌(議政府都憲)이 되었다.

1896년 봉상시제조(奉常寺提調), 1897년 궁내부특진관, 1899년 비서원경, 1901년 사직서제조(社稷署提調)·시종원경 등을 거쳐, 1902년 장례원경·지돈녕원사(知敦寧院事), 1903년 경효전제조(景孝殿提調), 1904년 지돈녕원사를 지낸 뒤 1905년 궁내부특진관, 1907년 장례원경을 지냈다.

참고문헌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일성록(日省錄)』
『국조방목(國朝榜目)』
『구한국관보(舊韓國官報)』
「고종조의 민란연구」(박광성, 『인천교육대학논문집』14, 1980)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