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만주 하얼빈에서 동지들과 함께 동흥학교(東興學校)를 설립하고 교원이 되어 학생들에게 민족정신을 고취시켰다.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발행되는 항일민족지 대동공보(大東共報)의 하얼빈지국장으로 하얼빈주재 통신탐방원(通信探訪員: 기자)활동을 하면서 신문보급업무를 담당하였다.
러시아어와 중국어에 능통하여 『대동공보』의 기사를 번역, 이를 중국신문 『원동보(遠東報)』와 러시아신문에 공급하였다.
1909년 10월 일본의 이토[伊藤博文]를 사살하기 위하여 하얼빈에 온 안중근(安重根)·우덕순(禹德淳)·유동하(劉東夏) 등으로부터 이토포살의거계획에 참여한 대동공보 블라디보스토크본사 논설편집기자인 이강(李剛)의 편지를 받고, 또다른 행동대원인 조도선(曺道先)을 안중근 일행에 합류시켰다.
10월 23일경 안중근 등 4명의 행동대원들과 함께 하얼빈 한인사회 유력자인 김성옥(金成玉)을 방문하여 역시 이강이 김성옥에게 보내는 편지를 전해준 뒤 그의 집에 들어가 행동대원들과 함께 이토를 포살하기 위한 구체적 실행계획을 상의하는 등 안중근의 이토포살의거에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