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통일신라시대, 군호 신삼천당(新三千幢)을 구성하던 부대 가운데 하나.
내용
신삼천당은 외삼천당(外三千幢)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이는 544년(진흥왕 5)에 왕경에 설치된 삼천당, 곧 구삼천당(舊三千幢) 혹은 내삼천당(內三千幢)에 대응하여 후일 새로 지방에 설치한 군사 조직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삼천당은 본래 소모병(召募兵)으로 충원되는 왕경의 보병부대였다가 지방의 주치소(州治所)에 가까운 요충지에 주둔하는 지방부대로 변화 · 개편되어 10정군단으로 발전하였다. 그런데 그 변화하는 과정에서 과거 왕경의 삼천당에 대응하는 형식으로 신삼천당이 신설되기에 이르렀다.
신삼천당을 구성하는 3개 부대 가운데 하나인 나생군삼천당은 676년(문무왕 16)에 명주 나생군(지금의 강원도 영월시 영월읍)에 설치되었으며, 나머지 우수주삼천당 및 나토군삼천당과 함께 나당전쟁에서 당나라와 말갈의 군대가 춘천 · 홍천 · 원주 · 제천 · 단양 · 죽령으로 이어지는 영서로(嶺西路)로 침입할 것에 대비하여 방어할 목적으로 창설되었다. 병력 자원은 나생군과 그 주변의 지방민들을 소집하여 조직한 군사 조직으로 추정된다.
다만 창설된 직후에 곧 나당전쟁이 종결되었으므로, 영서로를 통한 외적의 침입이 없었고 그 가능성마저 사라졌으므로, 이 부대가 실제로 군사적 기능을 발휘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설치 이후 곧 유명무실하였을 것이다. 부대를 상징하는 옷깃[금(衿)]의 빛깔은 알 수 없고, 군관 조직도 미상이다.
참고문헌
원전
- 『삼국사기(三國史記)』
단행본
- 이문기, 『신라병제사연구』(일조각, 1997)
- 末松保和, 『新羅史の諸問題』(東洋文庫, 1954)
논문
- 한준수, 「신라 통일기 신삼천당의 설치와 운용」(『한국고대사연구』 78, 한국고대사학회, 2015)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