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척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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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제도
신라시대, 신라의 23군호 중 12번째 군호로서, 축성 등 토목공사를 담당하는 기술자인 장척 등을 관리하던 공병 부대.
제도/법령·제도
시행 시기
통일신라시대
내용 요약

대장척당은 신라시대, 신라의 23군호 중 12번째 군호로서, 축성 등 토목공사를 담당하는 기술자인 장척 등을 관리하던 공병 부대이다. 사료가 소략하여 무금(無衿)이었던 사실만 전해지고 있어 실체를 알 수 없다. 부대 명칭 속에 축성 기술자가 가졌던 장척이라는 직명이 들어 있어, 축성 기술자들을 징발・편성하여 축성 등 토목공사를 담당하였던 공병 부대로 보인다.

목차
정의
신라시대, 신라의 23군호 중 12번째 군호로서, 축성 등 토목공사를 담당하는 기술자인 장척 등을 관리하던 공병 부대.
내용

『삼국사기』 직관지(하) 무관조 범군호 부분에서 신라의 23개 군호 중 12번째 군호로 기록된 군사 조직이다. 23군호의 대부분이 복수의 부대로 구성되어 있는데 비해 대장척당을 비롯한 몇 개의 군호는 하나의 부대로만 되어 있어 이색적이다.

부대를 상징하는 옷깃의 색깔이 없다는[무금(無衿)] 점 외에는 관련 기록이 전혀 없어 그 실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다만 7세기 후반 신라의 대대적인 군제 개혁의 결과로 성립된 23군호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적어도 통일신라 초기에는 존속하던 부대임은 확실하다.

참고할 만한 것은 「 남산신성비」에서 축성의 최고 기술자가 장척(匠尺)으로 나온다는 사실이다. 대장척당은 부대 명칭 속에 장척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축성 기술자들을 징발 · 편성하여 축성 등 토목공사를 담당하는 공병 부대일 수 있다.

한편 『삼국사기』 직관지(하) 무관조 제군관 부분에는 같은 이름을 가진 대장척당주(大匠尺幢主)와 대장척감(大匠尺監)이라는 정원 15명의 군관이 보이는데, 이들은 군호 6정의 6개 부대, 9서당의 9개 부대에 각 1명씩 배속되었을 뿐 대장척당과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들은 대장척당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원전

『삼국사기(三國史記)』

단행본

이인철, 『신라정치제도사연구』(일지사, 1993)
정구복 외, 『개정증보 역주 삼국사기』-4, 주석편(하)(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2)

논문

전덕재, 「『삼국사기』 직관지 무관조의 원전과 찬술에 대한 고찰: 제군관・범군호 기록을 중심으로」(『한국문화』 86,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19)
이인철, 「신라의 군사조직과 그 운영실태」(『군사』 28,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1994)
노근석, 「신라 중고기의 군사조직과 지휘체계」(『한국고대사연구』 5, 한국고대사학회, 1992)
집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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