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여갑당은 통일신라시대에 왕경에 설치하였던 군사조직이다. 23군호의 하나인 39여갑당을 구성하는 부대이다. 신라는 7세기 후반 노동부대로 변질된 법당을 폐지하고 그 성격을 계승한 군호 39여갑당으로 재편하면서, 이를 경여갑당·소경여갑당·외여갑당으로 나누었다. 이때 설치된 경여갑당은 39여갑당을 대표하는 부대이며, 규모도 그중에서는 가장 컸다. 군관으로는 법당주 15명, 법당감 15명, 법당화척 15명과 법당두상 45명, 법당벽주 45명이 배속되어 있었다.
경여갑당은 통일신라시대의 신라 군제 23군호 중 18번째 군호인 39여갑당을 구성하는 부대 가운데 하나이다. 명칭으로 보아 왕경(王京)에 설치된 여갑당으로 볼 수 있는데, 소경에 설치된 소경여갑당과 외방에 설치된 외여갑당이 군호 39여갑당의 구성 부대로 함께 존재하고 있는 사실에서 추정할 수 있다.
신라는 7세기 무렵까지 군사조직을 필요에 따라 무질서하게 만들어 왔다. 그러나 7세기 후반에 무질서한 군사조직들을 23개의 군호로 정리 · 재편하는 대대적인 군제 개혁을 단행하였다. 그 개혁 과정에서 노동부대로 변질된 기존의 법당(法幢)을 폐지하고, 법당의 성격을 계승한 39개의 여갑당 부대로 구성된 39여갑당이라는 군호를 설치하였다.
39여갑당은 소재 지역이 왕경 · 소경 · 지방인가에 따라 경여갑당 · 소경여갑당 · 외여갑당으로 나누었다. 따라서 경여갑당을 설치한 시기는 7세기 후반으로 보인다.
경여갑당은 39여갑당 가운데 왕경에 설치된 부대로서 39여갑당을 대표하며, 그 규모도 39개의 여갑당 가운데에서 가장 컸다. 군관으로는 당주 계열인 법당주 15명, 법당감 15명, 법당화척 15명과 두상 계열인 법당두상 45명, 법당벽주 45명이 배속되어 있었고, 부대를 상징하는 옷깃의 색깔은 무금(無衿)이라하여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