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현

  • 역사
  • 인물
  • 대한제국기
  •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때,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였으며, 출옥 후 독립운동가 가족들의 생계를 지원하는 조직을 설립하려다 체포된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901년(고종 38)
  • 사망 연도1940년
  • 출생지전라남도 영광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강진갑 (한양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4년 04월 15일
일제 주요감시대상 인물카드 남궁현 전후면 미디어 정보

일제 주요감시대상 인물카드 남궁현 전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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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였으며, 출옥 후 독립운동가 가족들의 생계를 지원하는 조직을 설립하려다 체포된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전라남도 영광 출신. 1919년 3월 13일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에서 일어난 3·1운동 만세시위 때 남문(南門) 밖 장터에서 고형진(高衡鎭) · 박태련(朴泰鍊) 등과 함께 학생 · 시민 등 군중들에게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시위를 주도하다가 붙잡혔다.

같은 해 8월 2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징역 1년을 언도받았으며, 같은 해 9월 1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6월을 선고받았는데, 재판과정에서 굽히지 않고 줄곧 법정투쟁을 전개하였다.

1927년 3월 조선청년총동맹 영광청년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고, 같은 해 10월 고려공산청년회에 가입하여 민족해방투쟁을 전개하다가 붙잡혀, 1931년 12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을 언도받았다.

1932년 7월부터 1933년 1월 사이에는 영광군 법성면 법성리 자택에서 정판갑(鄭判甲)과 함께 조기 건조사업을 하여, 그 수익금으로 희생된 독립운동가 가족들의 생계를 지원하는 조직을 설립하려다 붙잡혔다.

1934년 7월 전주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을 언도받았으며, 같은 해 11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이 확정되었다. 그뒤 1939년 10월에도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또다시 금고 8월을 언도받았으며, 이듬해 옥고의 여독으로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86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 『독립운동사』 3(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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