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태종 때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창건되었다. 1530년(중종 25)에 중수하고 1635년(인조 13)에 중창하였으며, 1720년(숙종 46) 웅천면 대창리에서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고, 1975년에 대성전을 중수하였다.
현존하는 건물은 대성전·명륜당·삼문(三門)·동재(東齋)·서재(西齋)·향관청(享官廳)·수복청(守僕廳) 등이 있으며,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2현(宋朝二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건축형태는 앞쪽에 강학 공간인 명륜당이 있고 뒤쪽에 제사 공간인 대성전이 있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형식이다. 향교 정면으로 옥서리(玉西里) 저수지와 남포 들녘, 서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고, 뒤로는 성주산(聖住山) 옥마봉(玉馬峰)이 우뚝 서 있다. 대성전은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로 팔작지붕이며,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으로 이루어져 있고 중간 3칸은 우물마루이며 후면은 온돌방을 두고 있다. 본 향교에는 동지는 없고 서재만 있는데, 이곳은 강학 공간이면서 향교의 관리 기능을 하는 고직사를 겸하기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현재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여러 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으며, 소장 전적은 6종 36책이 있다. 1997년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