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와 작자는 미상이다. 축 형태의 채색필사본으로 세로 132㎝, 가로 83.5㎝이다.
「남한지도」는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에 위치한 남한산성을 그린 지도로 원성(元城), 외성(外城), 포루(砲壘), 돈대(墩臺), 옹성(甕城), 암문(暗門), 장대(將臺), 사찰(寺刹) 등이 자세하게 표시된 전형적인 산성도이다.
남한산성은 한양도성으로 가는데 반드시 거쳐야 할 주요 길목으로서 북한산성(北漢山城)과 더불어 서울을 남북으로 지키는 산성 중의 하나이다. 삼국시대부터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만한 중요한 지역이라 할 수 있는 천혜의 전략적 요충지로서 수원 독성산성(禿城山城: 禿山城)과 용인의 석성산성(石城山城)과 함께 산성으로서의 자연지형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 지도의 제작자와 작성연대는 미상이나 산성의 수축공사를 책임지는 남한산성도총섭(南漢山城都摠攝)이 산성관리와 수축을 위하여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남한산성 수축론이 본격적으로 대두된 것은 1624년(인조 2)이다. 인조반정(1623년) 이후 광해군대의 중립외교를 포기하고 친명배금으로 후금(後金)을 자극함으로써 국방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었다.
조선 초기에는 ‘남한산성’을 ‘일장산성’이라 불렀으며, ‘남한산성’이란 이름이 등장하는 것은 선조 때부터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남한산성의 규모에 대해 『남한지』에는 원성의 경우 성벽 안둘레는 6,290보로 17리반, 바깥둘레는 7,295보로 20리 95보, 여장은 1,940타이며, 5옹성과, 16개의 암문, 125개소의 군포(軍鋪), 4개소의 장대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성벽의 둘레를 주척으로 환산하면 안둘레는 8,114m 이고, 바깥둘레는 9,411m 정도이다.
성내에는 현존하는 장경사(長慶寺)를 포함하여 10개의 사찰이 표시되어 있으며, 연무관(演武館), 침과정(枕戈亭), 현절사(顯節祠) 등도 묘사되어 있다. 또한, 산성과 서울을 연락하는 주요 나루터인 송파진(松坡津), 삼전도(三田渡), 광진(廣津)을 비롯하여 도로 및 하천이 표시되어 있다. 장경사는 인조 때 남한산성 수축 당시 승군들이 머무르는 군막사찰로 지어진 곳이었다. 지도의 여백에는 오영장(五營將)과 담당 장대, 원성·신성(新城)·옹성의 둘레를 각각 표시하고, 암문과 대포혈(大砲穴)의 수를 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