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양아리 석각

  • 예술·체육
  • 유적
  • 철기
  • 시도자연유산
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면에 있는 중국의 서불 관련 암각화. 석각화.
이칭
  • 이칭금산의 마애석각, 서불과차(徐巾過此)
시도자연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정희준 (경상남도)
  • 최종수정 2024년 11월 27일
남해상주리석각의 전경 미디어 정보

남해상주리석각의 전경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면에 있는 중국의 서불 관련 암각화. 석각화.

내용

세로 50㎝, 가로 100㎝. 1974년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금산(錦山) 부소암(扶蘇巖)으로 오르는 길목의 가로 7m, 세로 4m의 평평한 암석 위에 새긴 것으로, ‘서불과차(徐巾過此)’라고 부르기도 한다.

전설에 의하면 중국 진시황(秦始皇) 때 삼신산(三神山) 불로초를 구하기 위하여 시종인 서불(徐巾)이 동남동녀(童男童女) 500여명을 거느리고 이곳 금산을 찾아 한동안 수렵 등으로 즐기다가, 떠나면서 자기들의 발자취를 후세에 남기기 위하여 이 화상문자(畵像文字)를 새겼다고 전해오고 있다.

이 석각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한 해독을 하지 못하고 있으나, 서불이 자기의 이름을 새겨둔 것이라고도 하며, 혹은 ‘서불기배일출(徐市起拜日出)’이라는 여섯자로 읽기도 한다.

석각이 만들어진 시대는 미상이나, 양아리 계곡에 비슷한 고문자가 새겨진 바위가 발견되었고, 그 부근 밭언덕 받침돌에서 새모양의 선화(線畫), 양아리 벽련마을 뒷산마루 바위에서 고문자가 발견되어, 선사시대로 추정되기도 한다.

예로부터 금산의 마애석각(磨崖石刻)이라고 불러왔으며, 암각은 주로 직선 · 곡선 · 점선 등으로 구성되었다. 남해지방 고대문화의 전래 및 형성 연구를 위한 귀중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 - 『남해의 얼』(남해군, 1983)

  • - 『경상남도지』(경상남도, 1978)

  • - 『문화유적총람』 중(문화재관리국, 1977)

  •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www.heritage.go.kr)

  • - 「이른바 서불석각의 실체와 서불전설의 의미」(신종원, 『한국 해양 신앙과 설화의 정체성 연구』, 2009)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