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면에 있는 중국의 서불 관련 암각화. 석각화.
내용
전설에 의하면 중국 진시황(秦始皇) 때 삼신산(三神山) 불로초를 구하기 위하여 시종인 서불(徐巾)이 동남동녀(童男童女) 500여명을 거느리고 이곳 금산을 찾아 한동안 수렵 등으로 즐기다가, 떠나면서 자기들의 발자취를 후세에 남기기 위하여 이 화상문자(畵像文字)를 새겼다고 전해오고 있다.
이 석각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한 해독을 하지 못하고 있으나, 서불이 자기의 이름을 새겨둔 것이라고도 하며, 혹은 ‘서불기배일출(徐市起拜日出)’이라는 여섯자로 읽기도 한다.
석각이 만들어진 시대는 미상이나, 양아리 계곡에 비슷한 고문자가 새겨진 바위가 발견되었고, 그 부근 밭언덕 받침돌에서 새모양의 선화(線畫), 양아리 벽련마을 뒷산마루 바위에서 고문자가 발견되어, 선사시대로 추정되기도 한다.
예로부터 금산의 마애석각(磨崖石刻)이라고 불러왔으며, 암각은 주로 직선 · 곡선 · 점선 등으로 구성되었다. 남해지방 고대문화의 전래 및 형성 연구를 위한 귀중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 『남해의 얼』(남해군, 1983)
- 『경상남도지』(경상남도, 1978)
- 『문화유적총람』 중(문화재관리국, 1977)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www.heritage.go.kr)
- 「이른바 서불석각의 실체와 서불전설의 의미」(신종원, 『한국 해양 신앙과 설화의 정체성 연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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