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9수의 연시조이다. 『존재가첩(存齋歌帖)』·『삼족당가첩(三足堂歌帖)』·『사중약강회명첩(社中約講會名帖)』 등에 전한다. 『삼족당가첩』의 작품은 1972년심재완(沈載完) 편 『역대시조전서』에 수록되었고, 『존재가첩』의 것은 1974년 경인문화사에서 영인한 『존재전서(存齋全書)』 권하(卷下) 부록편에 수록되었다.
『존재가첩』에는 시종 우일절(右一節)이라는 말로 구분하였고, 『삼족당가첩』에는 매수 끝마다 우일장(右一章)·우이장(右二章) 등으로 구분하였다. 위계환(魏桂煥) 소장의 『사중약강회명첩』에는 우조출(右朝出)·우적전(右適田)·운초(耘草)·오게(午憩)·점심(點心)·석귀(夕歸)·초추(初秋)·상신(嘗新)·음사(飮社) 등으로 각 수마다의 제목을 별도로 붙였다.
이 작품은 농촌의 하루 일과를 작자 자신이 농부의 처지에서 진솔하고 곡진하게 노래함으로써 농부들의 생활상이나 생활감정을 절실하게 드러낸 생활문학이다. 내용 가운데 제1수 「조출」은 돋아 오르는 햇빛이 서산에 비치는 이른 아침에 비온 뒤 풀이 우거진 밭들을 차례로 매겠다는 서사적(序詞的) 내용이다.
제2수 「적전」은 도롱이에 호미를 걸고 소를 몰아 물가에 자란 풀을 뜯어 먹이며 일터로 나가는 광경을 노래하였다. 제3수 「운초」는 이골저골 사래마다 우거진 잡초들을 쳐내는 광경을, 제4수 「오게」는 뙤약볕에 땀을 흘리며 일을 하다가 시원한 바람에 옷깃을 열고 잠시 쉬는 광경을 읊고 있다.
제5수 「점심」은 어느덧 점심때가 되어 보리밥과 콩잎채를 나누어 먹은 뒤 잠시 낮잠을 즐기는 광경이다. 제6수 「석귀」는 해가 진 뒤 시냇물에 손발을 씻고 초동의 피리소리를 들으며 귀가하는 광경을 노래했다. 제7수 「초추」는 초가을 들녘에서 활짝 핀 목화와 고개 숙인 벼이삭을 바라보며 흐뭇해지는 심정을 읊은 것이다.
제8수 「상신」에서는 집으로 돌아와 밥상 앞에서 잔을 들고 흥겨워하는 모습을 노래하고 있으며, 제9수 「음사」에서는 저녁식사 뒤에 노소가 모여 흥겹게 즐기는 광경을 노래로 읊었다.
이 작품은 사대부가 지은 전원시조이면서도 사대부의 신분을 벗어나 농부의 처지에서 농민의 생활을 노래하였고, 한자어 대신 사투리를 그대로 구사하며 민요를 적극 수용하였다. 이러한 성격은 일반적인 사대부의 시조가 세사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조화를 구현하는 것으로 이상을 삼았던 것과 견주어볼 때 상당한 변모를 가져온 것으로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