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927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농민 단체.
개설
설립배경
그런데 이들이 항일 독립운동의 인적 · 물적 기반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안정된 독립운동 기반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이들의 생활을 향상시키는 것이 무장투쟁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역설하였다.
그래서 이를 지지하는 재만 독립운동지도자들과 힘을 모아 단체 설립을 추진하였다.
설립목적
셋째 보건위생에 대해 계몽하고 병원을 설치하여 보건 환경 위생을 개선시켜, 재만 한인농민들의 생활을 개선시키는 것이었다.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한인농민들의 집단농촌을 건설하려 하였다.
기능과 역할
같은 해 4월 길림성 대동문(大東門) 밖 대동공사(大東公司)에서 안창호를 비롯한 김기풍(金基豐) · 김진호(金鎭浩) · 김원식(金元植) · 김호(金虎) · 김동삼(金東三) · 김정제(金定濟, 또는 金定消) · 김유성(金有聲, 또는 金有成) · 김일병(金一秉) · 곽종경(郭鍾敬, 또는 郭鍾毓) · 곽우명(郭宇明) · 엄영무(嚴永武) · 이욱(李旭) · 이유필(李裕弼) · 배형식(裵亨湜) · 박기백(朴起白) · 성태영(成泰永) · 안규원(安奎源) · 윤도숙(尹道淑) · 윤원규(尹元圭) · 오상헌(吳尙憲) · 오송파(吳松坡) · 오동진(吳東振) · 옥이성(玉以成) · 최석순(崔錫淳) · 최만영(崔萬榮) · 현정경(玄正卿) 등의 발기인이 모여 발족되었다.
재만 한인들을 사원(社員 : 株主를 뜻함)으로 모집하고, 사원들이 출자한 돈으로 토지를 매입, 출자액에 따라 토지를 분배, 경작하게 하여 집단농촌을 건설하였다. 토지매입을 위한 출자액을 일시에 불입할 수 없는 사원은 5개년 분할하여 매년 저축하게 하였고, 저축할 능력마저 없는 사원에게는 토지 조차(租借)를 알선하여 주기로 하였다.
집단농촌 내에서 사원은 서로 협동해서 산업 · 교육 · 풍교(風敎) · 보위(保衛) 등을 위해 함께 노력하고, 서로간에 신용과 박애를 존중하고 청결 · 정미(精美)에 힘쓰도록 하였다. 사업은 일시 진전이 있었으나 많은 어려움에 부닥쳐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1931년 일제의 만주침략으로 소멸되었다.
참고문헌
- 『한국공산주의운동사(韓國共産主義運動史)』 4(김준엽·김창순, 고려대학교아세아문제연구소, 1974)
- 『무장독립운동비사(武裝獨立運動秘史)』(채근식, 대한민국공보처, 1949)
- 『해외조선혁명운동소사(海外朝鮮革命運動小史)』 Ⅰ(최형우, 동방문화사, 1945)
- 『朝鮮獨立運動』 Ⅱ(金正明 編, 原書房,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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