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은 안정수(安定洙)이고 발기자는 황용성·서필순·안정수·이원익·신성구·김승제(金承齊)·차두환·안규선·양홍빈·송헌길·윤석규 등이다.
공제회의 항일운동은 대한제국을 보호국화 한 일제가 해외에 있는 한인들마저 그들의 보호령하에 두기 위해 미국주재 일본 영사로 하여금 한인의 생명과 재산 보호를 명분으로 한인인명조사를 실시하려고 하자 이를 즉각 거부하는 가운데서 강력하게 분출되었다.
한인인명조사 거부를 위해 공제회는 1907년 10월 13일 집회를 가지고 동맹문을 작성·반포하였는데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일인 영사에게서 오는 자에게는 성명도 알게 하지 말며, 둘째, 한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고 칭하는 간계한 행위를 거절하며, 셋째, 만일 한인 동포 중에서 자신의 성명을 알려주어 일인의 조사에 응하다가 탄로될 때에는 한 하늘 아래서 함께 사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하여 강력한 항일민족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후의 활동에 대해서는 자료상의 미비로 확인할 수 없으나 공제회는 1909년 2월에 결성된 국민회로 통합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