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립연대는 미상이다.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고려 충혜왕 때 설립되었다는 설도 있으나, 본격적인 건물창건은 1398년(태조 7) 대성전이 설립되면서부터이다. 1674년(숙종 즉위년) 부사 이헌유(李憲儒)가 중건하고, 1747년(영조 23) 부사 안정헌(安廷헌)이 중건하였고, 순조 연간에 다시 중수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3칸의 대성전, 각 3칸의 동무(東廡)와 서무(西廡), 7칸의 명륜당, 내신문(內神門)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2현(宋朝二賢) 및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건축형태는 앞쪽에 명륜당을 중심으로 한 학당부를 두고, 후면에는 대성전을 중심으로 한 문묘부를 배치한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식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된 대성전은 석축 기단을 쌓고 자연석 덤벙주초 위에 원형기둥을 세웠는데 기둥에 따라 배흘림기둥과 민흘림기둥이 각각 보인다. 또한 2고주 5량으로 초익공 양식이고, 맞배지붕에 홑처마이며 풍판이 설치되어 있다. 명륜당은 정면 7칸, 측면 3칸의 규모로 2고주 5량이고 초익공 양식이다. 또한 맞배지붕에 홑처마이며 풍판이 있다. 명륜당은 정면에 3중 기단을 쌓고 자연석의 덤벙주초 위에 원형기둥을 세웠는데 전면의 누 아래에는 살[箭]을 설치하여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맞배지붕의 동무 · 서무는 반듯하고 편평한 주춧돌 위에 원형기둥을 세웠는데 민흘림과 배흘림이 모두 보이며 가구는 3량가이고 포작없는 무익공식이다.
조선시대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 ·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이 향교는 1985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으며, 향교의 운영은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