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상회사(大同商會社)·평양상회라고도 부른다. 평안도 상인 20명이 수십만냥 이상의 자금을 출자해 설립한 유통회사이다. 당시 영국 영사의 보고서에는 출자자가 1인당 5,000에서 1만 달러씩 출자해 설립했다고 되어 있다.
선박을 소유했으며, 설립 초에는 쌀·쇠가죽·목화 등 국내산품을 전국 각지에서 매매하였다. 그러다가 곧 무역에도 관계해 1886년(고종 23) 개항장이자 본사가 있는 인천에 지점을 설치하고 목화를 상하이[上海]에 수출하는 등 국내산품을 외국에 수출하였다. 외국상인으로부터 수입품을 매입해 국내시장에서 판매했으며, 때로는 이를 내륙지방의 객주의 손을 거쳐 유통시키기도 하였다.
당시 정부에서는 상회사를 보호하고 있어서, 설립 때부터 통리아문(統理衙門)이 전국 각 지방관에게 대동상회의 영업활동을 보호해주고 잡세(雜稅)나 분전(分錢)을 징수하지 못하도록 지시하였다. 그래서 출자자인 사원들이 통리아문에서 발급한 대동상회의 빙표(馮票)를 가지고 전국 각지에서 상품 매매를 할 때는 지방관의 보호를 받았다.
그러나 당시 국내시장의 유통은 여전히 객주가 지배하고 있었으므로, 내륙지방에서는 객주들과 많은 분쟁을 일으켰다. 때로는 객주에게 분전을 강제로 빼앗기기도 했고, 특권상인인 도고(都賈)·시전(市廛) 들과 마찰이 일어났다.
비교적 튼튼한 자본력을 가지고 출발했으나 때로는 영국상인으로부터 자금을 융통하기도 하였다. 개항 초기에 설립된 상회사의 하나로 당시로서는 가장 큰 규모의 근대적 기업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