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막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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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제도
고구려 말기의 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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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구려 말기의 관직.
내용

‘태막리지(太莫離支)’라고도 한다. 대인(大人) 또는 대수장(大首長)의 뜻을 지닌 막리지에서 분화, 발전된 행정과 군사권을 장악한 최고관직이다.

막리지는 고구려의 제1품 관직인 대대로(大對盧)와 같은 관직이므로, 대막리지는 태대대로(太大對盧)에 해당한다. 막리지였다가 정변을 통하여 집권한 연개소문(淵蓋蘇文)이 최초의 대막리지가 되었다.

≪구당서 舊唐書≫ 고려전(高麗傳) 등 중국의 문헌에서는 연개소문의 관직을 막리지로 기록하고 있지만, 이는 대막리지를 가리키는 것이다. 막리지는 여러 명이 동시에 존재하였고, 3년의 임기에 세습도 가능하였다. 정치적 권한도 국사(國事)에만 한정되고, 군사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이에 반하여 연개소문 집권 후 신설된 대막리지는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될 뿐만 아니라, 그 권력을 종신 보유하는 것이 그 특징이다. 그리고 ≪구당서≫ 고려전이나 <천남생묘지 泉男生墓誌> 등에서 보여주듯, 국사와 군사를 모두 장악한 최고관직이었다.

연개소문이 죽은 뒤 아들 남생(男生)과 남산(男産)은 자신들의 정치적 위치를 강화하고, 강대한 권력을 장악하기 위하여(실질적인 성격은 대막리지와 같은 것이지만) 태대막리지(太大莫離支)라고 하는 관직을 신설하였다. 남생과 남산은 각각 태대막리지가 되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한국금석전문』(허흥식, 1984)
『삼국지(三國志)』
『구당서(舊唐書)』
『신당서(新唐書)』
『통전(通典)』
『자치통감(資治通鑑)』
『한원(翰苑)』
『일본서기(日本書紀)』
「高句麗官位制とその展開」(武田幸男, 『朝鮮學報』 86, 1978)
「高句麗莫離支考」(請田正幸, 『朝鮮歷史論集』 上,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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