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평양에서 안창호(安昌浩)·윤치호(尹致昊) 등이 교육구국 운동의 일환으로 중학교 과정의 대성학교를 설립하였다. 1912년 봄 제1회 졸업생 19명을 배출한 뒤, 600여 명의 학생들이 재학 중인 채 폐교되었다.
1920년 6월 평양에 거주하고 있던 대성학교 졸업생들이 중심이 되어 폐교 당시 재학했던 학우들과 함께 친목 도모 및 폐교된 대성학교의 재건립을 목적으로 조직하였다. 회장·총무·서기 등 집행부로 구성된 이사진과 평의원을 두었으며, 회원은 대성학교 졸업생 및 폐교 당시 재학하였던 인물들로 구성되었다.
초대 회장은 김성업(金性業), 총무는 김행일(金行一), 서기는 조명식(趙明植)·이제학(李濟鶴)이었다. 뒤에 조종완(趙鍾完) 등이 회장을 맡았으며, 김찬종(金燦鍾) 등이 평의원을 지냈다. 매년 5월 단오절에 정기총회를 개최하였다.
창립총회에서 폐교된 대성학교의 재건립 문제가 거론된 뒤 이를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여 회원들과 유지들로부터 기금을 모금하였다. 1923년 기존의 평양동명학관(東明學館)과 평양학관(平壤學館)을 인수해서 경영하였다. 특히 동명학관을 중학교로 발전시켜 모교 재건립의 모체로 삼기로 하고 교사를 증축하는 등 동명학관을 확충시켜 나갔다.
이어 5만여 원의 기금과 교사 신축부지 6,000여 평을 확보하였으나 일제의 방해로 사업은 침체에 빠졌다. 그러나 1927년부터 기금 모금을 위한 음악회를 개최하는 한편, 후원회를 조직해 다시 활발히 추진하였다.
그 밖의 활동으로 1923년 4월 최린(崔麟)·송진우(宋鎭禹)·현상윤(玄相允)을 평양에 초청하여 강연회를 개최했고, 1924년 6월 회원들을 연사로 한 강연회를 가졌다. 회보를 발행했고, 1934년 평양에 회관을 신축하였다. 1937년 8월 해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