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에서 당나라로 유학하며 불법을 공부한 승려.
내용
그 뒤 황매(黃梅)의 심인(心印)을 받고 866년(경문왕 6) 귀국하여 월광사(月光寺)에 머무르면서 법요(法要)를 선양하였다. 명성이 천하에 퍼지자 경문왕이 칙서를 내려 흠모의 뜻을 전하였다. 68세로 입적하였으며 시호는 원랑(圓朗), 탑호(塔號)는 대보선광(大寶禪光)이다.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월광사에 있던 '제천 월광사지 원랑선사탑비'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으며,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이능화, 신문관, 1918)
-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조선총독부, 1919)
- 「월악산 월광사지 원랑선사대보선광탑에 대하여」(정영호, 『고고미술』129·130합집, 1979)
- 『조선선교사(朝鮮禪敎史)』(忽滑谷快天, 정호경 역, 보련각,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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