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자학·대학·사문학은 교과 과정 등이 모두 같고 단지 입학 자격에 차이가 있었다. 대학에는 문무 5품 이상 관리의 아들과 손자, 3품 이상 관리의 증손자, 주2 3품 이상으로 봉작이 있는 사람의 아들이 입학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국자학·대학·사문학에는 ① 잡로에 관계되거나 공(工)·상(商)·악(樂)에 이름이 오른 천사자(賤事者), ② 주3 또는 주4 간의 금혼을 어긴 사람, ③ 주5가 바르지 않은 사람, ④ 악역(惡逆)을 범하고 귀향(歸鄕)을 당한 사람, ⑤ 천인, 향·부곡인 등의 자손과 자신이 스스로 주6를 저지른 사람 등은 입학이 허락되지 않았다.
정원은 『고려사(高麗史)』 선거지(選擧志)에 국자학·대학·사문학 각 3백 인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 모두 합쳐 3백 인이었을 것이라는 추정에 의하면 대학의 정원은 1백 명이었을 것이다.
교육 과정은 국자학·대학·사문학 모두 『효경(孝經)』과 『논어(論語)』를 1년 동안 이수한 뒤, 주11·『공양전(公羊傳)』[^12]·『곡량전(穀梁傳)』[^13]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2년 반 동안 이수하고, 이어 『주역(周易)』·『모시(毛詩)』[^14]· 『주례(周禮)』· 『의례(儀禮)』 가운데 하나를 2년 동안 이수하며, 마지막으로 『예기(禮記)』와 주15 가운데 하나를 3년 동안 이수하도록 되어 있었다.
또 여가에는 산학(算學)과 주16도 익히고 하루에 한 장 분량의 글씨 연습을 하도록 하였다. 또한 주8·『설문(說文)』[^17]·『자림(字林)』·『삼창(三倉)』[^9]· 『이아(爾雅)』 등 자전류를 읽게 하였다.
교관으로는 성종 대에 대학박사 · 대학조교를 두었고, 문종 대에 대학박사의 품계를 종 7품, 정원을 2인으로 하였다. 대학박사 · 대학조교는 모두 경학에 뛰어나고 언행이 독실하여 모범이 될 만한 사람을 신중하게 선발하였다.
한편 인종 대에 상정(詳定)된 국자감의 여러 가지 학식이 실제로 적용되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견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