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자학 ()

고려시대사
제도
고려시대, 최고 교육기관인 국자감의 유학부(儒學部) 가운데 하나.
제도/법령·제도
시행 시기
고려시대
시행처
국자감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국자학은 고려시대, 최고 교육기관인 국자감의 유학부(儒學部) 가운데 하나이다. 국자학에는 문 · 무관 3품 이상의 아들과 손자 등이 입학할 수 있었으며, 국자학 생도는 규정된 교육과정과 수업연한에 따라 국자감에서 공부하였다. 국자박사와 국자조교가 국자학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정의
고려시대, 최고 교육기관인 국자감의 유학부(儒學部) 가운데 하나.
입학 기준과 정원

고려시대 국자감의 유학부에는 국자학(國子學) · 태학(太學) · 사문학(四門學) 등이 있었는데, 입학할 수 있는 기준이 서로 달랐다. 국자학에는 문 · 무관 3품 이상 관리의 아들과 손자, 훈관(勳官) 2품으로 현공(縣公) 이상을 띤 사람의 아들, 경관(京官) 4품으로 3품 이상에 훈봉(勳封)된 사람의 아들이 입학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고려의 입학 기준은 당나라의 학식(學式)과 거의 차이가 없지만 규정대로 시행되었는지 분명하지 않다. 국자학의 정원도 규정대로라면 당나라와 마찬가지로 300명이지만, 국자학 · 태학 · 사문학 전체를 합친 정원이 300명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교육과정

국자학의 교육과정과 수업연한을 보면, 『 효경(孝經)』과 『 논어((論語)』는 공통 필수 과목으로 수업연한은 1년이었다. 그리고 『 상서(尙書)』 · 『공양전(公羊傳)』 · 『곡량전(穀梁傳)』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여 2년 반 동안, 『 주역(周易)』 · 『모시(毛詩)』 · 『 주례(周禮)』 · 『 의례(儀禮)』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여 2년 동안 이수하여야 했다. 마지막으로 『 예기(禮記)』와 『좌전(左傳)』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여 3년 동안 이수하였다.

정규과정을 공부하는 여가에는 산학(算學)과 시무책(時務策)을 익히고, 하루에 한 장 분량의 글씨 연습을 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국어(國語)』 · 『설문(說文)』 · 『자림(字林)』 등과 같은 자전류를 읽음으로써 문자의 원리를 익히도록 하였다.

정해진 교육과정을 모두 이수하려면 8년 6개월이 소요되었다. 하지만 국자감 생도로 재학한 지 9년이 넘어도 깨우치지 못하여 성과를 거두지 못한 생도는 출교시켰다. 규정상의 기간은 교육과정을 이수할 수 있는 최대 기간으로 파악된다.

국자학의 교관으로는 국자박사(國子博士) · 국자조교(國子助敎)를 두었는데, 문종 때 기준으로 국자박사의 품계는 정7품이고 정원은 2인이었다. 1298년(충렬왕 24)에 충선왕이 국학을 성균감(成均監)으로 바꾸면서 국자박사를 성균박사로 고쳤으며, 1356년(공민왕 5)에 다시 국자감으로 바뀌면서 성균박사도 국자박사가 되었다.

의의 및 평가

국자학의 입학 기준은 중국의 학식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렇지만, 고려에서는 국자감에 입학할 수 없는 대상을 별도로 명시하였다. 국자학에 입학할 수 없는 대상은 ① 잡로(雜路)에 관계되거나 공(工) · 상(商) · 악(樂)에 이름이 오른 천사자(賤事者), ② 대공친(大功親) 또는 소공친 간의 금혼 규제를 어긴 사람, ③ 가도(家道)가 바르지 않은 사람, ④ 악역(惡逆)을 범하고 귀향(歸鄕)된 사람, ⑤ 천인, 향곡 및 부곡 사람 등의 자손과 자신이 사죄(私罪)를 저지른 사람 등이었다.

이들은 국자학뿐만 아니라 태학 · 사문학에도 입학할 수 없었다. 중국의 제도를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고려는 중국의 학식에 없는 입학 부자격자 규정을 마련하였다. 따라서 교육기관의 입학 자격에도 신분적 차별 관념이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원전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단행본

박찬수, 『고려시대 교육제도사 연구』(경인문화사,1991)
신천식, 『고려교육제도사연구』(형설출판사, 1983)

논문

김난옥, 「고려시대 국자감의 입학기준과 그 의미」(『한국중세사연구』 64, 한국중세사학회, 2021)
신호웅, 「고려중기 국학에 대한 소고: 그 구성과 교육과정을 중심으로」(『동아시아 문화연구』 2,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1982)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