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장구보유』는 조선 전기 문신·학자 이언적이 주희의 『대학장구』를 해석하여 1794년에 간행한 주석서이다. 『대학』은 주희가 경1장과 전10장으로 구성하였지만, 이 저서는 경1장에 전9장으로 구성하였다. 경과 전의 구절 차례를 바꾸어 뜻이 통하도록 함으로써 『대학장구』의 잘못된 점을 보충하였기 때문에 “대학장구보유”라 하였다. 권두에 정조의 어제서가 있고, 권말에 노수신의 발문이 있다. 이 책 뒤에 실린 「속대학혹문」은 『대학장구보유』에서 『대학장구』와 저자의 해석이 다른 이유를 6개 조항의 문답식으로 밝혀 놓았다.
『대학』의 구성은 주희의 『대학장구』를 비롯해 경1장과 전10장으로 되어 있지만, 이 저서는 경1장에 전9장으로 구성하였고, 경과 전의 구절 차례를 바꾸어 뜻이 통하도록 함으로써 『대학장구』의 잘못된 점을 보충하였기 때문에 “대학장구보유”란 이름이 붙여졌다. 그리고 이 책 뒤에 「속대학혹문(續大學或問)」이 실려 있는데, 이것은 『대학장구보유』의 뜻을 구체적으로 밝힌 것이다.
이 글은 『대학장구』의 본말(本末)을 해석한 전(傳)의 “청송오유인야(聽訟吾猶人也)……차위지본(此謂知本)”의 4장을 뽑아다가 경의 하단인 “미지유야(未之有也)”의 아래에 놓아 경의 결어(結語)로 삼았고, 『대학장구』에서 이미 망일(亡佚)되었다고 한 격물치지장(格物致知章)은 경 가운데서 ‘지지이후(知止而后)’의 하문과 ‘물유본말(物有本末)’의 하문 2절을 뽑아서 전의 제4장으로 삼았다. 또한, 『대학장구』의 전6장을 여기서는 5장으로, 7장은 6장으로, 8장은 7장으로, 9장은 8장으로, 10장은 9장으로 삼고, 전의 10장을 없애버렸다.
『대학장구』의 해석에서는 ‘여(慮)’를 ‘사(思)’로 ‘지선(止善)’을 ‘중(中)’으로 치국(治國)의 근본을 인(仁)으로 풀이한 것과, 우서(虞書)의 “극명준덕(克明俊德)……여민오변시옹(黎民於變時雍)”이라고 한 글을 명덕(明德)과 신민(新民)으로 풀이하였다.
이 글의 하반부에 실려 있는 「속대학혹문」은 『대학장구보유』에서 『대학장구』와 저자의 해석이 다른 이유를 6개 조항의 문답식으로 하여 간단명료하게 밝혀놓았다. 그 6개 조항은 ①정이(程頤)의 뜻에 따라 차서(次序)를 바로 하는 이유, ②청송(聽訟) 이하의 일절을 정현(鄭玄)은 고본대학(古本大學)에서 ‘지어신(止於信)’ 아래에 두었는데, 정자는 경의 끝에 두었고, 주희는 『대학장구』에서 전4장에 놓았는데, 이것을 다시 경의 끝에 놓아야 하는 이유(정자의 뜻을 따른 것),
③격물치지장을 주희는 망일되었다고 했으나, 여기서는 경문 중의 2절을 취해 보충하는 이유를 밝혀 말하기를 “주자가 다시 태어나더라도 이 뜻을 따를 것이다.”라고 하였다. ④여(慮)를 사(思)로 풀이하는 이유, ⑤우서의 “극명준덕……여민오변시옹”을 ‘명명덕(明明德)’과 ‘신민’으로, ‘윤집궐중(允執厥中)’을 ‘지지선(止至善)’으로 풀이하는 이유, ⑥인을 치국평천하의 근본이라고 하는 이유를 차례로 밝히고 있다.
『대학장구보유』와 「속대학혹문」은 모두 대학의 본래 뜻을 바르게 이해하고 전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하겠다. 물론, 그의 이론이 다 옳다고는 볼 수 없지만, 예리하고 날카로운 견해는 주희의 미흡한 점을 보충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그 뒤 주희를 맹신한 학자들에게 학문하는 자세와 연구하는 방법을 제시해 무조건 남의 이론에 순종하는 학풍을 바로잡는 데 큰 도움이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또한 우리나라 학자로서 당시 주희의 잘못을 대담하게 비판하고 바로잡은 것에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