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석대한애국부인청년단(盤石大韓愛國婦人靑年團) 또는 대한독립여자청년단이라고도 한다.
1910년 일제에 강점된 뒤, 조선의 독립을 희망하고 그 기회만을 기다리고 있던 북장로파 전도부인 최영반(崔靈盤)과 사립학교 교사 안인대(安仁大) 등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고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자, 기다리던 조선 독립의 때가 왔다고 생각하였다.
이 때 각지에 있는 독립운동가들이 자금 부족으로 독립운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독립군 자금을 송금하고 있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이에 1920년 2월 대한독립청년단 단장 조형신(曺亨信)과 총무 최봉주(崔奉周) 등으로부터 항일운동단체 조직을 권유받고 동지들과 함께 강서군 성대면에서 국민향촌회여자부(國民鄕村會女子部)를 결성해 독립군 자금을 모금하는 한편, 독립정신을 고무하는 격문을 배포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그 뒤 안인대·최영반·고유순(高有順) 등은 조형신과 최봉주를 통해 대한독립청년단 고문 김예진(金禮鎭)으로부터 국민향촌회여자부를 발전시켜 대한독립청년단여자부로 조직을 개편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이에 따라 같은 해 4월 강서군 반석면에 있는 북장로파 예수교회당 부속 반석학교 여학생 교실에서 동지인 이후배(李厚培)·노철남(盧徹南, 또는 盧撤南)·김용인(金用仁)·최풍원(崔風元, 또는 崔鳳元)·노원효(盧元孝)·최능인(崔能仁)·송애사(宋愛思, 또는 受思)·백운옥(白雲玉) 등과 함께 국민향촌회여자부를 대한애국부인청년단으로 발전시켰다.
단장은 최영반, 서기는 안인대(동아일보에는 안인대가 대표인 회장으로 되어 있다), 재무 고유순이었으며, 단원들은 대부분 북장로파 신도들이었다.
단원들로부터 독립군 자금을 모금해 김예진을 통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보내는 한편, 평양 등지의 부호들로부터 독립군 자금을 모금한 사실이 일제경찰에 탐지되어, 1921년 3월 안인대 등 단원들이 잡혔다.
1920년대 초 평안도지방에서 전개된 항일 여성 독립운동의 한 양상은 기독교도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독립군 자금을 모금,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송달하는 것이었는데, 이 단체는 그 전형적인 사례의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