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및 편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1책의 필사본이다. 표제는 ‘덕산현읍지(德山縣邑誌)’이고, 내제는 ‘읍지(邑誌)’이다. 표제 아래 ‘충청남도(忠淸南道)’라는 부제가 작은 글씨로 써 있다. 전체적으로 글씨체가 서로 달라 여러 사람이 베껴 쓴 것으로 보인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도서이다.
『덕산현읍지』는 1896년(고종 33)에 편찬하여 간행하였다.
수록 항목은 연혁, 정도(程道), 도로, 군명(郡名), 성씨(姓氏), 형승(形勝), 고적(古蹟), 사묘(祠廟), 역원(驛院), 성지(城池), 관애(關阨), 진량(津梁), 제언(堤堰), 사찰(寺刹), 관우(館宇), 세로(稅路), 창고(倉庫), 군병(軍兵), 전총(田摠), 조적(糶糴), 봉름(俸廩), 토산(土産), 선생안(先生案) 등으로 구성하였다. ‘선생안’ 항목에는 덕산현에 부임한 역대 206인의 지방관 명단을 수록하였다. 이름 아래 해당 지방관의 부임 시기와 체직 시기, 구체적인 업적, 이임 시 관직, 사망 사실, 공적비 건립 등을 작은 글씨로 기록하였다.
18세기 후반에 편찬된 전국 지리지 『여지도서(輿地圖書)』의 수록 항목과 차이가 있는데, 『덕산현읍지』에 수록한 항목이 23개인 것에 비해 『여지도서』에는 29개 항목이 실려 있다. 일단 두 지리지에 공통으로 수록된 항목은 19개[도로, 건치연혁, 군명, 형승, 성씨, 단묘, 제언, 창고, 물산, 역원, 관애, 사찰, 고적, 인물, 한전, 수전, 조적, 전세, 봉름 등]이며, 『여지도서』에만 수록된 항목은 9개 항목[방리, 관직, 산천, 풍속, 공해, 진공, 대동, 균세, 군병 등]이다. 단순히 항목 수 차이만이 아니라, 내용이 많이 다르다는 점에서 변화상을 읽을 수 있다.
『여지도서』와 『덕산현읍지』의 항목 구성이 차이 나는 이유는 시기별 편찬 의도와 방향이 달랐기 때문이다. 즉 18세기의 전국 지리지와 19세기의 지방 읍지 편찬관이 변화하였으며, 시기별 읍지의 편찬 의도와 방향이 달랐음을 의미한다. 두 문헌을 비교 검토하여 조선 후기 지방의 군제나 전제, 세제 등의 변화상을 파악할 수 있다. 조선시대 덕산현(德山縣) 지금의 [예산군 덕산면] 지역의 향토사를 연구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조선시대 광범위하게 편찬된 읍지는 지방 각 읍의 지지(地誌)인 동시에 지방사이자 행정 사례집이다. 『덕산현읍지』 역시 조선시대 충청남도 덕산현의 지방행정과 경제, 사회적 배경 및 지방의 특징과 성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