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 ‘도설지(導設智)’라고도 표기되어 있다. 사탁부(沙喙部) 소속. 550년(진흥왕 12) 전후하여 단양신라적성비(丹陽新羅赤城碑)가 세워질 때에는 급간지(及干支)의 관등을 가지고 추문촌당주(鄒文村幢主)로서 이사부지(伊史夫智;異斯夫) 등과 함께 고두림성(高頭林城)에 있는 군주(軍主)의 한명으로서 진흥왕의 교(敎)를 받들었다.
그리고 561년(진흥왕 22) 2월에 창녕신라진흥왕척경비(昌寧新羅眞興王拓境碑)가 세워질 때에는 사척간(沙尺干)으로 승진하고 대등(大等)이 되어 무력지(武力智:金武力) 등과 함께 창녕지역을 순수하는 진흥왕을 수행하였다.
한편 최근에는 이 도설지를 대가야의 마지막 왕인 도설지왕(道設智王)과 동일인으로 보고 그는 탈지이질금(脫知爾叱今) 및 월광태자(月光太子)와 동일인인데, 540년 내지 550년 사이에 신라로 망명하여 신라의 귀족사회에 편입되어 활동하다가 대가야가 신라의 공격에 의하여 격파된 뒤 그들의 반감을 무마하기 위하여 대가야로 파견되어, 그가 신라의 무력을 배경으로 신라의 꼭두각시 왕으로 즉위하였으며, 얼마 안 있어 신라의 지시에 따라 촌주(村主)로 격하되거나 또는 은퇴하였다는 추측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