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문관은 궁중의 경서(經書) 및 사적(史籍)을 관리하고 문서를 처리하며, 또한 왕의 자문에 응하던 기관이었다.
홍문관에는 1456년(세조 2)에 없어진 집현전의 장서가 이관되었는데, 효종 때 내의원(內醫院) 서쪽에 2층건물의 장서각을 짓고 수장(收藏)하였다. 이 건물이 등영각이다.
장서는 집현전 장서각에 있었던 서적을 주축으로 하여 계강시에 부족해서 인출한 강서(講書), 서사관(書寫官)의 선사본(繕寫本), 화원(畫員)이 제작한 화첩(畫帖), 경외신간서(京外新刊書), 중국에서 구입해온 책 등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전화(戰禍)·화재 등으로 1906년(광무 10)에는 7, 780책에 불과하였다.
이들 장서에는 앞면에 ‘朝鮮國御藏書(조선국어장서)’, 뒷면에 ‘朝鮮國六代癸未歲御藏書大明天順七年(조선국육대계미세어장서대명천순칠년)’이라는 장서인과 매권 본문이 처음 시작되는 곳에 ‘弘文館(홍문관)’이라는 주인(朱印)이 찍혀졌다.
장서인 날인과 대출 제도 등은 직제학의 제청으로 실시되었고, 전반적인 관리는 부수찬이 감독하였다. 그 밑에 박사는 설경(說經), 저작(著作)은 사경(司經), 정자(正字)는 전경(典經)을 겸하여 장서를 관리하였다. 그리고 책색서리(冊色書吏)가 장서를 출납, 검장(檢藏)하였다.
등영각은 홍문관에서 고문(顧問)에 대비하고, 문한(文翰)을 처리하는 기능을 위해서 자료를 수집·정리·보관·이용하던 일종의 왕실도서관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