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1906년 10월 관공서 건물 건축에 사용할 건축재료를 정부에서 자급하기로 하고 탁지부 건축소 내에 공업부(工業部)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그 밑에 연와공장과 와(瓦) 및 토관 제조공장을 두기로 하였다.
연와제조공장은 토질 및 교통관계로 마포에 세우기로 하고, 1907년 1월부터 건설공사를 시작, 4월 중순부터는 연와 생산을 시작하였으며, 10월에 완공하였다.
고정자본금은 14만원이었다. 설립 첫해인 1907년에 연와 189만여 본(本)을 제조해 대한의원(大韓醫院), 의정부평리원(議政府平理院), 공업전습소(工業傳習所) 건물 건축 및 세관공사부(稅關工事部), 수도국(水道局) 등에 공급하였다.
1907년 공업부가 연와제조소로 개칭되면서 여기에 속하게 되었다. 일본 제일은행(第一銀行) 한국총지점과 특약을 체결해 신축 행사(行舍)에 사용할 연와를 독점 공급하기로 하고 이에 필요한 연와제조시설 확충공사를 시작, 1908년 10월에 준공하였다.
이에 따라 연와생산량은 비약적으로 증가해 1908년에는 총 550여만본의 연와를 제조하였다. 그 뒤 계속 시설을 확충해 1909년에는 621만여 본, 1910년에는 699만여 본을 생산하였다. 1910년 8월 우리 나라가 일제에 의해 강점되자, 조선총독부 산하 기구로 편입되었다.
이 때 공장 현황은 토지 16만6,580,7㎡, 원토조합장(原土組合場) 1동(棟), 호프만식 수요(輸窯) 2기(基), 60마력 성능을 가진 기악(汽岳) 2기, 40마력의 성능을 가진 기기(汽機) 2기, 역시 40마력의 연와압출기(煉瓦壓出機) 1기 등의 설비와 일본인 직공인부(職工人夫) 32명, 한국인 직공인부 176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