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권 5책. 필사본. 서문과 발문이 없다. 전북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권1에 연보 · 세계도, 시 619수, 권2∼4에 소차(疏箚) 125편, 권5는 부록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일상생활에서 느낀 소회를 읊은 것과 만시 · 유배시(流配詩)로 나눌 수 있다. 유배시는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으로 철원(鐵原) · 북청(北靑) 등지에 유배되어 있을 때 지은 것이다. 그의 만년 인생의 비탄과 자조어린 회억(懷憶)의 탄식이 담겨 있다. 부인의 부음을 듣고 지은 「도철원문부인부(到鐵原聞夫人訃)」 15수는 애절하고 비상(悲傷)한 부부의 정을 곡진하게 표현한 것으로 문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소 가운데 「승비후사체소(承批後辭遞疏)」는 1652년(효종 3)에 올린 것이다. 당시 효종의 인재등용의 득실을 논하면서 대동법(大同法) 실시를 수수방관하고 있는 삼공(三公)의 무능함을 추궁하고, 원방에 유배되어 있는 대신들을 풀어줄 것과 조익(趙翼) · 김집(金集) 같은 노성(老成)한 초야의 대신들의 의견을 수렴할 것 등을 주장하였다. 또한, 내수사(內需司)에서 각 궁에 파견된 궁노들의 탐학무도한 행위를 금할 것과 부역 · 부세의 공정한 시행, 군적(軍籍)의 폐해 시정, 이남(二南) · 관북지방의 굶주린 백성들의 구제에 힘써줄 것 등을 요청하였다.
「진소회소(陳所懷疏)」는 1655년에 올린 소이다. 인군의 입지(立志)와 입기(立期)를 촉구하고, 먼저 본원(本源)을 바르게 하여 현재(賢才)를 얻어서 허심(虛心)으로 임용한다면, 당시 시무론자(時務論者)들이 주장한 기강(紀綱)의 진작 · 인심의 수습 · 군정(軍政)의 수명(修明) 등은 자연히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 내용이다.
이밖에 「환조후재사겸진소회소(還朝後再辭兼陳所懷疏)」, 1682년(숙종 8)에 올린 「논호포차(論戶布箚)」 · 「소회소(所懷疏)」 등은 당시 삼정(三政)의 문란함을 시정할 것과 황정(荒政)의 개선을 주장한 내용들이다. 나머지 많은 상소문들도 조정의 당파 · 기강 · 국방문제 등을 언급하고 있어 당시 정치 · 사회 상황을 이해하는 데 참고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