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하(晩霞)의 호는 청악(淸岳)이며 서울 출신으로 알려져 있으나 출신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전하지 않는다. 전라남도 강진군의 수인사에 주석하며 활동하였다. 화월숙홍(化月淑葒, 1820~1886)의 8대 법손이고 서주 의첨(犀舟懿沾)의 법손 제자이며 연파 혜장(蓮坡惠藏)의 4대 법손이다. 혜암(惠庵), 청봉 세영(淸峰世英)과는 동문이다. 『동사열전(東師列傳)』에 의하면 타고난 성격이 호탕하고 인품이 뛰어나 세세한 일에 구애받지 않았으며, 작고 옹졸한 마음이 없어서 승려나 속인을 막론하고 멀리 살든 가까이 살든 모두 한번 만나보고 싶어 했다. 오가는 사람들이 날마다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으나 대접하는데 있어서는 늘 변함이 없었다고 한다. 만하는 강진군 도암면에 있는 보리산 석문암(石門庵)을 고쳐 짓고 염불당을 지었다. 경내의 공전(公殿)과 방사(房舍)를 다시 짓고, 동서의 재각(齋閣)을 짓고자 노력하였다. 1894년(고종 31) 무렵까지 보리산에 주석하였으나 언제 입적하였는지 알 수 없다.
청허 휴정(淸虛休靜) 아래서 나온 4대 문파(門派) 중 소요파의 조사 소요 태능(逍遙太能)을 종조로 해서 비교적 최근인 2002년에 설립된 대한불교선각종에서는 만하를 12세 종조로 추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