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 管子≫ 내업편(內業篇)에 무극의 관념이 나타나지만 무극이라는 말로써 표현된 것은 ≪노자 老子≫이다. ≪춘추좌씨전≫이나 ≪장자 莊子≫·≪열자 列子≫ 등에도 이 말이 보인다.
무극이 중국 사상의 중요 문제로 대두된 것은 주돈이(周敦頤)가 <태극도설 太極圖說>에서 태극과 관련지어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이라고 한 데서부터이다. 주희(朱熹)는 무극을 끝없는 궁극자, 태극을 태(太)인 궁극자로 해석하여 무극과 태극을 동실이명(同實異名)으로 보고, 주돈이의 무극을 형상 없는 무한정자로 이해하였다.
그래서 주희는 ‘무극이태극’을 ‘무형이유리(無形而有理)’로 파악하였다. 이에 육구연(陸九淵)은 뜻을 달리하여 논쟁을 벌였다. 주희는 주돈이의 <태극도설> 중의 ‘무극이태극’이라는 명제가 ‘태극본무극(太極本無極)’이라는 명제가 서로 일치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무극이태극’을 무극이 태극을 낳은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하였다. 주희는 육구연이 ≪송사 宋史≫ 염계전(濂溪傳)에 ‘자(自)’·‘위(爲)’ 두 글자가 있는 것을 근거로 하여 태극이 무극에 근원한 것이라는 해석에 반대하였다.
반면, 주희는 주돈이가 무극을 말한 까닭은 바로 방소(方所)에 무형상(無形狀)한 것을 말한 것이라 해석하였다. 주희는 육구연이 태극 밖에 무극이 따로 없다고 한 것에는 동의했지만, 논리를 전개하는 데는 의견을 달리하였다.
주희는 태극만을 말하고 무극을 말하지 않으면 태극이 마치 하나의 물건처럼 되어버려 본원(本源)과 멀어지고, 무극만 말하고 태극을 말하지 않는다면 무극은 공적(空寂)에 빠져 주체 구실을 못한다고 하였다.
주희는 ‘무극이태극’은 단지 ‘무형이유리’를 말한 것이라고 보아 무극과 태극을 동실이명의 관계로 보고, 노자나 장자가 말하는 무극의 개념과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 주희는 무극과 태극의 관계를 유가적 입장(儒家的立場)에서 풀이하였다.
즉 “상천(上天)의 일은 무성무취(無聲無臭)하지만, 실로 조화(造化)의 추뉴(樞紐)요 품휘(品彙)의 근저(根柢)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극이면서 태극이라 한 것이며, 태극 밖에 무극이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천명하였다.
그는 “태극은 다만 무극이기 때문에 다시 갈 곳이 없다. 지고(至高)·지묘(至妙)·지신(至神)·지정(至精)한 것이다. 주돈이는 사람들이 태극에 형상이 있다고 말할까 두려워서 ‘무극이태극’이라고 말한 것이다. 무 가운데 지극한 이(理)가 있다.”고 하였다.
조선조의 장현광(張顯光)은 무극과 태극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선유(先儒)가 이(理)를 말하기를 ‘무극이태극’이라고 했는데, 태극은 이로써 천지만물의 원두(元頭)가 되는 지고한 것이다. 즉, 무극은 이로써 전후에 걸쳐 궁진(窮盡)할 바가 없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무극과 태극의 의미는 동일하지만 다만 두 가지 이름으로 표현되었다는 것을 더욱 분명히 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무릇 다시 더할 수 없는 바와 궁진할 바가 없다는 것은 다른 뜻이 아니다. 스스로 다시 더할 것이 없기 때문에 궁진할 바가 없는 것이요, 능히 궁진할 바가 없기 때문에 드디어 다시 더할 것이 없는 것이다. 무극이 바로 태극이라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리고 태극과 무극, 무극과 태극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파악하였다. “무극도 역시 두가지 뜻이 있다. 그 하나는 형상이 없음이요, 다른 하나는 궁진함이 없음이다. 기(氣)에 속하는 것에는 반드시 청탁(淸濁)이 있고, 형에 속하는 것에는 반드시 방원(方圓)이 있다. 그러나 이인 경우 청탁으로 말할 수가 없고 방원으로도 말할 수가 없다. 이것은 곧 모상이 없기 때문이다. 또, 기에 속하는 것은 반드시 소장(消長)이 있고, 형에 속하는 것은 반드시 취산(聚散)이 있다. 그러나 이인 경우 소장과 취산이 있지 않다. 이것은 궁진함이 없기 때문이다. 이가 모상이 없고 궁진함이 없음은 곧 극(極)이며 무(無)인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