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량수경연의술문찬 ()

불교
문헌
신라, 승려 경흥이 정토삼부경 중 하나인 『무량수경』을 본문을 따라가며 자세하게 풀이한 주석서.
이칭
이칭
무량수경술찬(無量壽經述贊)’, 무량수경술기(無量壽經述記)
문헌/고서
편찬 시기
신라
간행 시기
1699년
저자
경흥(璟興)
소장처
종교대학(宗敎大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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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무량수경연의술문찬』은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와 왕생을 설한 『무량수경』을 해석한 주석서이다. 이 책은 혜원(慧遠)의 『무량수경의소(無量壽經義疏)』, 길장(吉藏)의 『무량수경의소(無量壽經義疏)』, 원효(元曉)의 『무량수경종요(無量壽經宗要)』와 더불어 무량수경의 4대 주석서로 일컬어진다.

정의
신라, 승려 경흥이 정토삼부경 중 하나인 『무량수경』을 본문을 따라가며 자세하게 풀이한 주석서.
서지사항

『무량수경연의술문찬』은 모두 3권으로 이루어졌다. 속장경 제1편 32투 4책에 수록된 것을 저본으로 하고 이것을 『신수대장경』 제37권에 수록된 것과 대조 교감하여 편찬한 것이 한국불교전서 2책에 수록되어 있다. 신수대장경에 수록된 것은 1699년(원록 12)에 간행되었고 종교대학(宗敎大學)에 소장된 것을 저본으로 하였다.

주석 대상 『무량수경』의 성격

『무량수경연의술문찬』은 모두 12가지 한역본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중 현재 전해지는 것은 다섯 가지이다. 경흥은 『무량수경연의술문찬』 본문에서 자신이 주석 대상으로 삼은 문헌은 이 가운데 축법호(竺法護)가 한역한 『무량수경』임을 밝혔는데, 이 한역본은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무량수경연의술문찬』에서 경흥이 해석의 대상으로 삼는 『무량수경』 본문을 대조해 보면 현재 전해지고 있는 한역본 중 강승개(康僧鎧)가 한역한 『무량수경』과 그 원문이 거의 일치한다. 비록 일부이기는 하지만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어서 양자가 동일한 책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다.

내용

경흥은 크게 세 단락으로 나누어서 『무량수경』을 해석하였다. 첫째, 본경이 설해진 이유[來義]를 설명하고 둘째, 명칭을 풀이하였으며 셋째, 본문을 풀이하였다.

① '내의(來義)'는 특정 경전, 품 등이 특정 시기에 설해진 이유를 설명한 것인데, 여기에서는 『무량수경』이 『관무량수경』 뒤에 설해진 이유를 설명하였다. 첫째, 정토의 소인(所因)을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내고자 하기 때문이다. 『관무량수경』에서 아직 극락정토의 의보(依報)와 정보(正報)의 장엄이 모두 법적(法積:法藏)이 세운 본서(本誓)의 힘에 의해 완성된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 본경에서 숙세(宿世)에 세운 48원(四十八願)을 자세히 설하여 그 극락정토가 지금 나타나게 된 원인이라는 것을 드러내야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둘째, 일체의 부처님께서는 비록 본원을 일으키지만 본원을 또한 성취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정토의 의보와 정보의 장엄을 보여 법적의 숙원은 이와 달리 반드시 이루어졌음을 보여 행자의 극락왕생의 뜻을 증가시키기 위한 것이다. 셋째, 『관무량수경』에서 비록 미래의 중생이 번뇌에 의해 고통받을 것을 말하기는 했지만, 중생이 고통의 모습을 듣지 않으면 정토를 좋아하고 예토를 싫어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왕생의 업도 또한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이제 본경에서 오악(五惡) · 오통(五痛) · 오소(五燒) 등을 자세히 설하여, 행자로 하여금 부지런히 수행하는 마음을 일으켜 정토에 왕생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② 먼저 『무량수경』에 대한 여러 가지 이역본(異譯本)을 열거하고, 그 가운데서 서진(西晉)의 축법호가 번역한 것을 대본으로 삼는 것을 밝혔다. 다음으로 축법호 한역본의 『불설무량수경』이라는 제목을 총별상대(總別相對) · 인법상대(人法相對) · 전지상대(詮旨相對) · 수미상대(首尾相對)의 네 가지 상대에 의해 풀이하였다.

③ 먼저 『무량수경』의 본문에 대한 기존의 분과(分科)를 소개하고 이를 낱낱이 비판하였다. 현일(玄一)과 법위(法位)의 10분과와 혜원(慧遠)의 3분과가 비판의 대상이 된다. 마지막으로 경흥 자신은 전통적인 방법에 따라 본문을 설경인기분(說經因起分) · 문답광설분(問答廣說分) · 문설희행분(聞說喜行分)으로 3분 하였는데, 이러한 분과는 유식 계통의 논서인 『불지경론(佛地經論)』에 의거한 것임을 밝혔다. 이어서 본문을 해석하였는데, 그 해석에 나타난 가장 큰 특징으로는은 유식학적 관점이 두드러진다는 점을 들 수 있고,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경흥은 법상종오성각별설(五性各別說)을 수용하였다. 경흥은 『무량수경』에서 중배(中輩)를 설명하면서 “비록 사문이 되어 크게 공덕을 닦는 일은 행할 수 없을지라도, 위 없는 보리심을 발하고 한결같이 오로지 무량수불을 생각하면서 얼마간의 을 닦고 재계(齋戒)를 받들어 지니며 탑과 불상을 건립하고 사문에게 공양하며 비단 휘장을 걸고 등불을 켜며 꽃을 뿌리고 향을 태워서 이것을 회향하여 그 국토에 왕생하기를 소원하는 사람이다.”라고 한 것에 대해, 『무량수경연의술문찬』에서 “‘보리심을 발하고’라고 한 것은 그곳에 왕생하는 이는 반드시 대심(大心)을 발해야 함을 나타내어, 성문과 연각의 정성(定性)이 왕생할 수 없는 것과 간별하고자 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정성 이승이 왕생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오성각별설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 또한 이러한 입장은 현일(玄一) · 원효(元曉) · 의적(義寂) 등과 같은 동시대 정토 계통의 저술을 남긴 신라의 학자들이 모두 정성 이승의 왕생을 허용한 것과는 다른 면모를 보이는 것이다.

둘째, 경흥은 유식 계통의 논서인 『섭대승론』의 별시의설(別時意說)을 수용하여, 부처님께서 『무량수경』에서 염불(念佛), 발원(發願)을 행하면 달리 인(因)을 닦지 않아도 왕생할 수 있다고 한 것은 방편으로 설한 것이니 모두 원생인(遠生因)일 뿐이고 극락왕생의 직접적 원인은 아니니, 원생인을 닦은 중생은 화토(化土 : 변화토)에 태어날 뿐이고 타수용토(他受用土)인 극락정토에는 태어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신라시대 정토교의 주요 특징 중 하나로 당나라의 정토교가 『관무량수경』을 중심으로 발달한 것과 달리 『무량수경』에 대한 연구가 활발했던 것을 들 수 있다. 신라에서는 7세기 후반에서 8세기 초에 이르는 짧은 기간에 원효 · 법위 · 의적 · 현일 · 경흥이 『무량수경』에 대한 주석서를 지었는데 현재 신라시대 찬술된 『무량수경』 전문에 대한 주석서로 온전히 남아있는 것은 경흥의 글 뿐이다. 경흥은 이 글에서 기존에 전역(傳譯)된 여러 경론을 풍부하게 인용하면서 본문을 주석하고 있다. 또한 혜원 · 길장 · 회감 등의 당나라 학자, 원효 · 현일 · 법위 등의 신라 학자들의 글을 두루 인용하면서 때로 수용하고 때로 비판하고 있어서, 그 학문적 폭이 매우 넓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안계현, 『신라정토사상사연구』(아세아문화사, 1976)
한명숙 옮김, 『무량수경연의술문찬』, (한글본 『한국불교전서 신라』 12, 동국대학교 출판부, 2014)

논문

김양순,「憬興의 唯識學的 淨土觀 -『無量壽經連義述文贊』을 중심으로-」( 『한국사상사학』 33, 한국사상사학회, 2009)
안계현, 「경흥의 미타정토왕생사상」(『불교학보』 1, 불교문화연구소,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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