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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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밀양시에 있는 조선전기 에 축조된 성곽. 읍성.
시도자연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심봉근 (부산대학교, 고고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밀양읍성 미디어 정보

밀양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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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남도 밀양시에 있는 조선전기 에 축조된 성곽. 읍성.

내용

1997년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1479년(성종 10)에 처음 돌로 쌓았는데 둘레 4,670자, 높이 9자, 우물 4개와 못이 1개소가 있었다고 하였다(石築周四千六百七十尺 高九尺 內有四井一池 成化十五年築)’.

1590년(선조 23) 부사(府使) 신잡(申磼)이 성 둘레에 물을 끌어 들여 해자(垓字)를 파고 물로서 성을 지키려 하였다. 뒤에 못 1, 우물 8, 동서야문을 늘려서 못 3개, 우물 8개, 4대문, 야문이 되었다. 동문은 1칸, 서문은 2층 3칸, 북문은 1칸이며 남문은 공해루라고 하였는데 3층 3칸이었다.

그리고 성안에서 죽은 상여나 시신은 모두 동서야문을 통과하게 하였다. 한편 이 읍성이 파괴된 것은 1902년 경부철도가 통과하게 되던 때와 1934년밀양에 교량이 놓여질 때이며 아동산과 아북산 주능선을 감아 돌던 성돌은 6·25동란 때 방어진지(方魚津址) 구축으로 모두 쓰였다.

성의 해자(垓字)는 ‘해천’이란 이름으로 내일동과 내이동을 경계짓는 하수도로 변하였고 지금은 무봉사(無鳳寺) 뒤에서 아동산 정상까지 성의 흔적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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