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은 박일(朴一). 함경북도 명천 출신. 19세에 일본에 유학하여 도쿄[東京] 도요대학[東洋大學]을 수학하다가 1926년 중퇴하고 귀국하여 1927년 카프(KAPF :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에 가담하였다.
이후 소년 잡지 『별나라』의 편집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주로 농민시와 동요를 많이 썼으며, 3편의 희곡과 몇 편의 평론을 발표하였다.
광복 뒤에는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에 가담하여 활동하다가,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위원을 역임하였다. 『우리문학』의 편집에 관여했으며, 1946년 조선문학가동맹이 결성된 뒤 월북하였다.
1946년 시집 『심화(心火)』를 우리문학사에서 간행하였으며, 월북 후에는 북한의 조선작가동맹출판사에서 간행한 『조선문학』을 편집하였고, 1959년 시집 『종다리』를 출간하였다.
작품 활동은 1927년 『습작시대(習作時代)』라는 동인지에 시 「흰나라」를 발표하면서 등단하였으며, 『동아일보』에 소설 「눈을 뜰 때까지」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후 목포와 서울 주변에 살면서 『조선문단』·『조선지광』·『신생』·『문예공론』·『음악과 시』·『형상』·『신동아』 등에 농민들과 농촌 생활에 관한 ‘농민시(農民詩)’를 주로 발표하였다.
초기에는 농촌을 소재로 한 서정적인 시세계를 보여주는 전원시(田園詩)와 같은 인상을 주는 시와 아이들을 위한 동요를 많이 발표하였다.
1927년 4월 『조선문단』에 발표한 「농부의 선물」과 같은 시가 그 예이다. 이후 카프 시인들의 일반적인 경향인, 노동자와 농민들의 시각에서 구체적인 농촌 현실을 고발하는 농민시를 주로 써서, 시적 리얼리즘을 획득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농부의 시름」·「농가구곡(農歌九曲)」·「농군행진곡(農軍行進曲)」 등이 그 예이며, 1937년『풍림(風林)』에 발표한 「만향(晩香)」이라는 서사시에 이르러 ‘어머니’를 통해 강한 현실 비판과 극복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광복 후에도 농촌을 배경으로 하여 당시의 미군정과 우익정권을 비판하는 시와 새로운 사회에 대한 기대를 표현하였다.
1945년 『예술』에 발표한 「심화」와 『예술운동』에 발표한 「농민가(農民歌)」 등이 그 예이다. 북한에서는 북한사회에 대한 희망과 기대감을 표현하는 이데올로기적인 편향성을 보이는 한편, 소박하고 진실한 감정을 간명한 언어와 운율로 표현했다고 평가되고 있다. 「종다리」·「의로운 벗들에게」 등 서정적인 경향을 보이는 작품들이 그 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