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0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작품은 한 인물을 중심으로 하여 서두에서는 인물과 관련된 사건의 내용을 소개하고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화자의 판단이나 정서적 반응을 나타내는 형식을 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단일 주제로 쓰인 시집 가운데에는 가장 많은 권수를 기록하고 있으며, 그러한 인물들을 통해 민족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나타내기보다는 각 개인들이 살아가는 삶의 구체성에 천착하는 일이 이 시를 구성하는 방법론적 원리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원리 아래 민중이 사용하는 토속적이고 일상적인 어휘를 그들이 실제로 발화하듯 사용함으로써 독특한 개성을 살려내고 동시에 민중적 시어의 영역을 확대할 수 있게 된다.
『만인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평범한 생활인들과 역사적인 인물들, 그리고 초월적·종교적인 인물들이 그 세 부류가 된다. 이 중에서도 평범한 생활인들에 대한 주목은, 모두 역사의 흐름과 무관하다고 인식되었던 소외된 군상들에게서야말로 투철하고 강인한 삶의 자세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만인보』에는 고은이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모습들이 애정 어린 시선에 의해 묘사되고 있어, 모두 전형적인 민중의 모습을 띠고 있는 이들의 삶을 통해 그들이 곧 우리의 피붙이이자 역사의 주체라는 인식을 보여준다. 동시에 민중의 애환은 곧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로부터 말미암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고은이 민중의 목소리를 통해 민중들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 지니고 있던 민중적 세계관이 구체화되어 정착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전의 시들이 자신의 이념에 따라 다소 생경하고 관념적으로 이루어졌다면 1980년대의 시들은 그러한 이념들이 오랜 시간과 실천을 통해 내면화되었음을 보여준다. 그 가운데 『만인보』는 민중들에 대한 폭넓은 애정 없이 쓰기 힘든 것인 만큼 시인이 민중적 세계에 그만큼 철저하고 가깝게 접근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문제와 갈등, 고통과 좌절을 구체적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인물을 통해 구현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만인보』는 한국적 시민사회의 형성과정을 그린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만인보』의 작품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이야기 시’로서의 기법은 시인의 사상과 정서를 화자의 목소리를 통해 간접적으로 제시함으로써 민중적 삶의 진실을 객관화하고 예술적 실천력을 강화하는 효과를 가져오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렇게 형상화되는 구체적인 개인의 목소리들은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세계를 넓혀 나가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그 사람들 사이에서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삶을 이해하는 자기의식을 찾는 과정에서 의미 있는 것들로 다가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