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운동을 하던 박성운이 전향 이후 아내가 운영하는 약국인 ‘녹성당(綠星堂)’ 안에서 겪는 일상적인 삶 속에서의 갈등이 나타나는 작품이다. 박성운을 중심으로 하여 주변 인물들이 등장하며, 그들은 각각 삶에 대한 서로 다른 태도를 보여주게 된다. 그 태도들이 얽혀 있는 중심에 서 있는 박성운의 무기력함이 별다른 갈등 없이 전반적인 소설의 흐름 속에서 드러난다.
이 소설은 크게 두드러지는 사건 없이 박성운의 일상적인 하루를 담고 있다. 약국인 ‘녹성당’이 자리를 잡고 있는 공간적인 배경의 특수성을 나타내는 도입부가 지나고 난 후의 첫 장면은 대중들의 문화적 욕망에 대하여 한 청년이 박성운에게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해 박성운은 대답을 피하려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박성운은 과거에 사회운동을 하다가 지금은 약사인 아내의 약국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약을 팔면서 생활을 한다. 박성운의 과거를 알기에 청년은 자신의 문화적 식견을 드러내며 동의를 구하지만 박성운은 자신의 판단 내용이 없어서가 아니라 생각이 있다고 하여도 그것을 실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는다.
동시에, 아내는 과거에 운동을 하던 경력을 훈장처럼 지니며 성실한 생활인도 되지 못하는 타락한 옛 동료들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던진다. 박성운은 이러한 비판이 마땅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이 생활인이 되어간다는 사실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또한 타락한 동료에 비해 자신이 우위에 있다고 주장하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옛 동료들을 비난하는 아내 앞에서 입을 다물고 당당하게 성병 치료약을 요구하는 동료들을 비난하지도 못한다. 결국 박성운은 청년과의 약속 장소로 가기 위해 약국을 나서지만 약국이 잘 되어 가느냐는 일본 순사의 물음에 ‘덕분에’라고 대답하며 별다른 특이함을 보이지 못한 채 소설은 마무리된다.
김남천의 단편 소설 「녹성당(綠星堂)」은, 1937년 6월 『조선문학』을 통해 발표된 「처(妻)를 때리고」와 더불어 자기고발적인 소설로 평가를 받는다. 이들 소설에서는 작가 자신을 연상시키는, 과거에는 사회주의자였지만 이제는 신념을 잃고 동시에 생활에도 무능력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 소설 속의 ‘나’는 판단 유예적인 행동을 보이면서 관찰문학론 전 단계에 작가가 도달한 자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 속의 약국 역시 간판에서 그 공간의 비정상적인 특성이 드러난다. 전문 약사가 약을 다룬다는 의미에서 ‘약국’이라는 명칭을 자랑스럽게 내세우면서도 약을 잘 팔기 위해 현학적 취향이 드러나는 에스페란토어 간판과 함께 온갖 광고 문구를 붙이고 있는 아이러니한 공간이다.
결과적으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박성운은 내면에서 겪는 갈등과 불안으로 당시의 비정상적인 내면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삶을 견디는 과정의 괴로움은 소설 속에서 나타나는 ‘잠수의 비유’를 통해 나타나, 1930년대 말 행동하지 못하는 주체의 내면을 형상화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