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껑이 없고 주둥이 쪽이 약간 퍼져 있으며 국수장국·떡국·비빔밥 등을 담는 데 쓴다. 반병두리의 재료인 놋쇠는 구리 10, 아연 3의 비율로 섞어서 만든 쇠붙이이다. 우리 나라는 청동기시대에 벌써 이러한 합금이 개발되고 있었으나 삼국시대나 통일신라 유물에서는 놋쇠식기를 찾아볼 수는 없다.
그러나 『삼국사기』 직관에 철유전(鐵鍮典)이 있고, 또 같은 책 잡지(雜志) 기용(器用)에 유석(鍮石)이 있어 이 때에 놋쇠식기가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놋쇠식기는 그 뒤 고려시대에 이르러 크게 일반화되었고, 이에 따라 일상 식생활에서 흔히 사용할 수 있는 반병두리도 만들어졌던 것이다.
그런데 이 때의 놋쇠식기는 상·하층 구별 없이 얼마나 애용되었던지, 『고려사』 공양왕 3년조에는 “동철(銅鐵)의 그릇을 금하고 오로지 자기(瓷器)와 목기(木器)를 써서 습속을 고치도록 하소서.”하는 상소문이 보이고 있다.
이렇듯 제한을 받으면서도 반병두리와 같은 놋기류는 조선시대로 이어져 『규합총서(閨閤叢書)』에는 통영·덕평·동래·안성 등의 특산품으로 기록되고 있다. 반병두리의 전통적인 제조 방법은 놋쇠덩이를 녹여내고 또 달구어 가면서 망치로 두들겨 늘려 그릇의 형태를 만드는 ‘방짜쇠’의 기법인데, 지금도 몇몇 지방에서는 이 기법이 그대로 전승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