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에는 현세적 이익이나 비를 비는 의식 등으로 많이 행하여졌으나 원래 이 의식은 『반야경』에 대한 신앙 및 수행법으로 널리 행하여졌던 법회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고려사』에 기록된 몇 가지 예를 들면, 1102년(숙종 7) 6월에 송충이의 해를 막기 위하여 2,000명의 승려들이 네 패로 나뉘어서 『반야경』을 읽으며 개경(開京) 주변의 산을 두루 돌았으며, 1106년(예종 1)에는 왕사(王師) 덕창(德昌)을 초빙하여 회경전(會慶殿)에서 『반야경』을 외며 비 오기를 기원하였다고 한다.
또 전염병을 막기 위한 기원으로서도 『반야경』을 읽는 반야도량이 열리었는데, 1109년(예종 4) 4월과 1120년 8월에 각각 개최되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도 그 초기에는 반야경도량이 가끔 개설되었으나, 성종 이후에는 이 도량이 거의 열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