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관서별곡」, 「기봉집」 등을 저술한 문신·학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549년(명종 4) 28세로 사마양시(司馬兩試)에 합격하고, 1552년(명종 7)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했다. 홍문관정자로 임명되고, 1553년(명종 8) 시부회(時賦會)에서 장원하여 선시십권(選詩十卷)을 상으로 받고 호당(湖堂)에 뽑혔다. 그 뒤 1555년(명종 10) 봄에 평안도평사가 되어 관서지방의 절경과 생활상 · 자연풍물 등을 읊은 기행가사(紀行歌辭)인 「관서별곡(關西別曲)」을 지었다.
이듬해 1556년(명종 11) 가을에 병이 들어 벼슬을 내놓고, 귀성하는 도중 음력 8월 전라북도 부안에서 35세의 나이로 객사하였다. 그는 천생자질이 뛰어나고, 뜻이 높아 효성과 우애가 극진하며 행실이 올바른 성품이었다.
일찍이 김인후(金麟厚) · 이이(李珥) · 신잠(申潛) · 기대승(奇大升) · 임억령(林億齡) · 정철(鄭澈) · 양응정(梁應鼎) · 최경창(崔慶昌) 등과 같은 당시의 대문장가들과 도의로써 교유하였다.
1808년(순조 8) 기양사(岐陽祠)에 배향되었으며, 저서로 『기봉집』이 있다. 1987년 11월 전국가비동호인회에서 묘가 있는 부산면 호계리 운치(雲峙)에 가비(歌碑)를 세웠다.
그의 「관서별곡」은 정철이 지은 가사 「관동별곡」보다 25년이나 앞서 지은 작품으로 기행가사의 효시가 되어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된다. 「관서별곡」은 평안도평사의 벼슬을 제수 받고, 관서지방을 향해 출발하는 것부터 부임지를 순시하기까지의 기행 노정을 운치 있게 그려낸 것으로, 국문학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가 지니고 있는 작품이다.
참고문헌
- 『당호비고(堂號備考)』
- 『지봉유설(芝峯類說)』
- 『한국가사선집』(이상보, 집문당, 1979)
- 『한국가사문학의 연구』(이상보, 형설출판사, 1974)
- 「관서별곡고」(김동욱, 『국어국문학』30, 1965)
- 「관서별곡연구」(이상보, 『국어국문학』26,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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