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계사는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지리산 천왕봉 동남쪽 아래에 있는, 신라시대 승려 연기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절이다. 그러나 승려 연기가 창건하였다는 역사적 근거는 거의 없다. 한국전쟁 때 불타 없어졌다가 1960년대 이후 새로 법당을 조성하였다. 조선시대 유학자의 유람록에 자주 등장하는데, 지리산 천왕봉에 오른 유람자가 다음 날 일출을 보기 위해 머무르는 숙박 장소로 이용되었다. 법계사 법당 왼쪽에는 보물로 지정된 산청 법계사 삼층석탑이 세워 있다.
법계사(法界寺)는 지리산 화엄사(智異山 華嚴寺), 지리산 연곡사(智異山 鷰谷寺)와 마찬가지로 544년(진흥왕 5)에 조사(祖師) 연기(緣起)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지만, 역사적 근거는 거의 없다.
법계사는 지리산 중산리에서 천왕봉(天王峯: 1,915m)으로 오르는 1,400m 지점에 있다. 천왕봉을 오르는 여러 갈래 길 가운데 정상에 오르는 최단 거리 코스에 자리한다. 중산리→법계사→천왕봉 방면의 길은 하루에도 왕복이 가능하다. 조선시대 유학자의 유람록에는 법계사(法溪寺), 벽계암(碧溪庵), 벽계암(碧磎庵), 벽계사(碧溪寺), 법계당(法界堂) 등의 명칭으로 나오는데, 천왕봉에 오른 유람자가 다음 날 일출을 보기 위해 머무르는 숙박 장소로 이용되었다. 지리산 유람록의 작품 속에 나오는 법계사 관련 내용은, 그곳에서 숙박하던 유람자가 산 정상 아래에서 바라보는 밤의 경치를 읊거나, 다음 날의 일출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표현한 것이 다수이다. 남쪽 하늘에서만 볼 수 있는 남극성(南極星)을 기대하는 내용도 여럿 보인다.
법계사 법당 왼쪽에 1968년 12월 19일 보물로 지정된 산청 법계사 삼층석탑(山淸 法界寺 三層石塔)이 세워져 있다. 거대한 자연 암석을 기단으로 삼아 그 위에 3층 탑신을 세웠다. 석탑의 규모가 크지 않고 조탑 양식도 약식화되어 있으며, 조형미도 투박하여 고려시대 석탑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