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모든 국가는 「전염병예방법」 또는 이에 대치할 수 있는 법령들을 공포하고 방역 대상이 되는 전염병의 종류를 지정하여 그에 대한 방역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현행 「전염병예방법」은 1954년 2월에 법률 제308호로 제정되었으며, 그 뒤 8차에 걸쳐 일부 개정하였다가 2000년 1월에 전면 개정하였다.
현재 우리나라의 법정전염병은 제1군·제2군·제3군·제4군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제1군은 6개, 제2군은 9개, 제3군은 18개, 제4군은 10개의 전염병을 지정하고 있다. 의사 또는 한의사가 전염병환자 등을 진단하였거나 의사가 그 시체를 검안하였을 때에는 전염병환자 등 또는 그 동거인에게 소독방법과 전염방지의 방법을 지시한다.
제1군·제2군 및 제4군 전염병의 경우에는 즉시로, 제3군 및 지정전염병의 경우에는 7일 이내에 그 전염병환자 등 또는 시체의 소재지를 관할하는 보건소장에게 그 성명, 연령, 성별, 기타사항을 신고하도록 되어 있다.
과거 우리나라는 보건의식·시설부족 등 다른 요인으로 여러 가지 전염병 또는 지방병의 만연을 보았었다. 즉, 1912년과 1916년 및 1920년에는 천연두의 대유행이 있었으며, 그밖에도 이질·장티푸스·성홍열·디프테리아 등의 급성전염병이 창궐하였다.
그러나 조선 말기까지는 전염병 관리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인습적인 무녀나 신불기원(神佛祈願), 미신 등에 의뢰하는 경향이 많았다.
1895년 10월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내령(內令) 제8호로 「종두규칙」이 공포되어 생후 70일에서 1년 내의 영아에 종두를 실시하도록 하였으며, 1899년 6월에 내령 제17호로 「지방종두세칙」이 공포되었다. 그러나 고식적인 보건사상에 젖어 있던 주민들이 천연두를 전염병으로 생각하지 않아 종두시행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는 각종 전염병의 창궐을 막기 위하여 전염병 예방을 중심으로 여러 규칙이 제정되었다. 1915년 6월 제령 제2호로 「전염병예방령」, 1920년 2월 총독부령 제50호로 「전염병예방액, 동혈청, 유행성감기예방액, 광견병예방제 매하규정」, 1928년 5월 총독부령 제21호로 「전염병예방령 시행규칙」 공포 등이 있었다.
또한 개개 전염병을 예방할 목적으로 1918년 1월 총독부령 제4호로 「종두시행에 관한 규칙」, 1919년 3월 경훈령 제6호로 「종두시행에 관한 규칙」, 1923년 4월 제령 제9호로 「조선종두령」, 1923년 5월 총독부령 제76호로 「조선종두령시행규칙」, 1924년 4월 총독부령 제18호로 「폐디스토마병예방에 관한 규칙」, 1935년 4월 제령 제4호로 「조선나예방령」, 총독부령 제6호로 「조선나예방령 시행규칙」이 공포되었으며 이밖에 식품·검역관계 기타 보건관계 법령들이 공포, 개정 또는 폐지되었다.
이들 보건관계 법령들은 일본에서 실시된 것과는 달리 조선총독부에서 제정되고 시종 경찰관장 하에서 다루어진 것이었다. 따라서, 전염병 관리에 기초를 두고 본격적으로 국가사업을 이끌어 나가기 시작한 것은 1954년 2월 2일 법률 제307호와 제308호로 각각 해·공항검역법 및 예방법의 제정, 공포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전염병의 발생 추이를 보면 새로운 전염병이 특이한 양식으로 우리 인간에게 전파되기도 한 반면, 과거 큰 유행을 하였던 전염병 중 역학적으로 발병하지 않은 질환이나 발생 빈도가 낮아진 질환도 많이 있다. 1970년대까지 장티푸스·콜레라 등 수인성 전염병과 디프테리아·백일해 등 호흡기 전염병이 빈번하게 발생하여 많은 인명의 손실이 있었다.
법정전염병의 환자발생 현황을 보면 사망률 또는 후유증이 높은 일본뇌염·소아마비·공수병 등은 방역사업의 효과로 발생하지 않고 있으며, 호흡기 전염병인 백일해는 예방접종 기피로 인하여 예년에 비하여 증가 추세에 있다.
또한 법정전염병으로 새롭게 지정된 렙토스피라증의 환자 발생은 많으나 예방 활동의 강화로 조기 치료하여 사망률(2%)은 크게 저하되었다. 인구 10만 명당 법정전염병의 발생률은 1960년, 1970년, 1980년, 1987년에 각각 215.0명, 96.6명, 23.5명, 10.0명으로 계속 감소하고 있다.
법정전염병으로 예후가 나쁘고 전염력이 강한 전염병을 법정전염병으로 지정하는 것이 근본정신이기는 하나, 각국의 여건에 따라 결정되는 수가 많고 때에 따라서 변경될 수도 있는 것이다.
현실 여건 가운데는 학술적인 면이나 방역 자체의 기술면보다도 국가의 재원, 인원, 시설들이 그 전염병 관리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설령 의료의 국가보장이 아직 완벽하지 못하였더라도 전염성질환만은 국가가 담당하여 방역·치료·와병 등과 환자 부양가족의 생활보장까지도 맡아주어야 할 것이다.
부강한 나라일수록 법정전염병으로 규제 받는 전염병의 종류나 수효가 많고, 개발도상국이며 경제가 빈약한 국가일수록 법정전염병의 수효가 적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염병 관리가 법 제정 또는 조직적인 관리만으로 질병 퇴치가 완전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들 전염병을 법으로 정하고, 국가적인 시책으로 이를 관리한 결과 우리나라의 전염병 발생은 과거 10여 년 동안에 급속도로 감소되었으며 일부 전염병은 완전히 근절되어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물론 아직도 일부 전염병이 계속 발생하고 있으며 이들 전염병의 우선적 관리는 주요 보건 과제인 것이다. 전염병으로 예기하지 않은 노동력의 손실, 치료를 위한 경제적 손실은 가정 및 국가 경제생활에 부담을 주게 되어 인적·물질적 피해도 대단히 크다.
개인의 건강은 개인의 재산인 동시에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보건사업만큼 국민생활 수준과 직결되는 사업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최근 수년 동안에 우리나라 전염병 발생이 급속히 감소된 이유에는 「전염병예방법」에 준하여 조직적인 제도하에서 국가적인 시책으로 이끌어 나간 것에도 기인하겠으나 국민생활과 직결된다고 생각되는 환경위생 상태와 안전급수 시설·국민보건 인식의 향상 등이 더 크게 작용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