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및 편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1책의 필사본이다. 국사편찬위원회 도서이다.
『보령읍지(保寧邑誌)』는 18~19세기 충청도 지역의 읍지를 총 51책으로 펴낸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 중 46책에 해당하는 것으로, 1901년(고종 38)에 다시 정리해서 편찬하였다.
수록 항목은 방리(坊里), 도로, 건치연혁(建置沿革), 군명(郡名), 형승(形勝), 성지(城池), 관직(官職), 산천, 성씨(姓氏), 풍속(風俗), 총묘(塚墓), 단묘(壇墓), 공해(公廨), 제언(堤堰), 창고(倉庫), 물산(物産), 교량(橋梁), 역원(驛院), 목장(牧場), 관애(關阨), 봉수(烽燧), 누정(樓亭), 사찰, 고적(古蹟), 진보(鎭堡), 인물, 한전(旱田), 수전(水田), 진공(進貢), 조적(糶糴), 전세(田稅), 대동(大同), 균세(均稅), 봉름(俸廩), 군병(軍兵), 책판(冊板) 등 36개로 구성하였다.
형승 항목에는 아름다운 경치를 노래한 이경전(李慶全)의 시 8편을 수록하였다. 조적 항목은 다시 군자창(軍資倉) · 상평청(常平廳) · 경리청(經理廳) · 균역청(均役廳) · 비변사(備邊司) 등으로 구분하여 상세히 기록하였는데, 이를 통해 한말의 재정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 특히 다른 지역에 비해 목장 항목을 별도로 구성하였는데, 이로 보아 보령(保寧) 지금의 충청남도 [보령시] 지역은 당시 목축과 관련해 일정한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18세기 후반에 편찬된 전국 지리지 『여지도서(輿地圖書)』의 수록 항목이 31개로 『보령읍지』가 5개 항목이 더 많다. 추가된 항목은 총묘와 관애, 누정, 진보, 책판 등이다. 『여지도서』와 『보령읍지』의 항목 구성이 차이 나는 이유는 시기별 편찬 의도와 방향이 달랐기 때문이다. 즉 18세기의 전국 지리지와 19세기의 지방 읍지 편찬관이 변화하였으며, 그에 따라 읍지의 편찬 의도와 방향이 달라졌음을 의미한다. 두 문헌을 비교 검토하여 조선 후기 지방의 군제나 전제, 세제 등의 변화상을 파악할 수 있으며, 당시 보령 지역의 향토사를 연구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조선시대에 광범위하게 편찬된 읍지는 지방 각 읍의 지지(地誌)인 동시에 지방사이자 행정 사례집이다. 『보령읍지』 역시 조선시대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지방행정과 경제, 사회적 배경 및 지방의 특징과 성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