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에서 이 도량이 언제부터 개설되었는지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다만, 우리 나라의 불교가 대승불교이고 삼국시대 이래 보살사상이 강조되었으며, 이 도량의 소의경전들이 일찍이 우리 나라에 들어와서 통일신라시대에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 신라시대부터 개설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문헌상의 기록은 고려시대 이후에 나타난다. 고려 왕실에서는 6월 15일에 궁중에서 보살계도량을 열었고, 이때 국사와 왕사를 비롯한 고승 대덕들이 주재하는 가운데 국왕이 보살계를 받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었다. 보살계는 승려나 속인을 가릴 것 없이 불도수행에 뜻을 두고 실천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같이 지켜야 할 실천덕목이다.
보살계 가운데에도 십중계(十重戒)와 십선계(十善戒)가 그 대표적인 것이다. 특히, 『범망경(梵網經)』에 설해진 십중계는 가장 근본적인 보살계로서, 만약에 이것을 어기게 되면 보살의 바라이죄(波羅夷罪)가 되고, 그 행위 따른 업이 작용하여 보살로서의 자격을 잃게된다. 또, 십선계는 『지도론(智度論)』에서 설하는 계인데, 이 제도도 몸가짐과 말씨와 마음씨를 올바르게 할 것을 규제하여 놓은 것이다.
이와 같은 보살계를 국왕이 받는다는 것은 국왕이 보살의 자격을 새로 얻거나, 또는 보살의 자격을 다시금 확인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보살계도량을 열어서 역대의 국왕이 대대로 보살계를 받았던 것은 그 스스로 불제자임을 다짐하고 널리 선언하는 의식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도량이 왜 6월 15일에 열리게 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일찍부터 6월 15일을 유두(流頭)라고 하여 모두들 제각기 동쪽으로 흐르는 냇물에 들어가서 머리와 몸을 씻고 더러움을 덜어 깨끗한 마음으로 잔치하는 유풍이 있었는데, 이와 같은 뜻있는 날을 택하여 마음과 몸가짐을 깨끗하고 바르게 가다듬을 것을 다짐하는 보살계도량을 열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려왕실의 보살계도량을 살펴보면, 정종 때에는 재위 13년 동안 오직 1044년(정종 10)에 한 번 있었을 뿐이었으나, 문종 때에는 재위 37년 동안 5회, 예종 때에는 재위 18년 동안 7회, 인종 때에는 재위 25년 중 16회에 걸쳐서 보살계를 받았다. 원래 이 도량은 6월 15일에 여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으나, 때로는 앞당겨져서 1092년(선종 9)에는 6월 14일에 열기도 하였고, 1172년(명종 2)에는 6월 25일에 열기도 하였다.
또, 이 보살계는 십중계만을 받는 약식으로 개최되는 경우가 있었다. 1095년(헌종 1) 6월 15일에 궁중에서 개설되었지만 이는 한 번뿐이었다. 원래 이 보살계는 승려나 속인을 가리지 않고 불문에 뜻을 둔 사람이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계율로서 계단(戒壇)이 설치된 많은 사찰에서 개설되었다.
특히 고려시대에는 왕실이 중심이 되어 이 보살계도량을 더욱 성하게 개설하였던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왕실에서 보살계를 여는 의식은 없어지고, 다만 불교교단에서 출가승을 위하여 계를 설하는 의식을 갖거나, 속인들에게는 보살계를 설하기도 하지만 일정한 날짜가 정례적으로 정해져 있지는 않았다.
현재 우리 나라의 각 사찰에서는 수시로 『범망경』으로 이 도량이 열리고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에서는 포살본(布薩本)으로 지정하고 있다. 보살계의 의식절차는 통상적인 의식을 마친 뒤 『범망경』을 읽고 계를 설하면서 그를 지킬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를 문답형식을 취하면서 진행한다. 현재 이 수계의식에는 구족계의 수계의식과 같이 화상(和尙), 계사(戒師), 교수사(敎授師)의 3사(師), 7명의 증명법사(證明法師)인 7증(證)이 참여하여 수계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