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림이라고도 한다.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불교의 해탈방법은 단번에 궁극적인 본성을 깨닫는 돈오(頓悟)와 점차적인 수행의 단계를 거쳐 오랜 기간의 수행 끝에 부처가 되는 점수(漸修)의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특히 선종은 돈오와 점수 가운데 돈오를 중요시 하였다. 돈오한 뒤에 점수의 수행이 필요하다고 하는 돈오점수설(頓悟漸修說)과 돈오하는 것 자체가 점수까지를 모두 끝마쳤으므로 더 이상의 수행이 필요하지 않다는 돈오돈수설(頓悟頓修說)로 나누어져서 커다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따라서 돈오돈수설에 입각하면 견성한 뒤에 보임이라는 수행과정이 필요하지 않지만, 돈오점수설에 의하면 반드시 보임의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돈오점수설을 채택하여 견성한 뒤에는 반드시 보임을 하도록 되어 있다.
특히 고려 중기의 고승 보조국사(普照國師)는 이를 강력히 천명하였는데, 견성을 한다는 것은 마치 어린아이가 세상에 태어나는 것과 같아서 눈 · 귀 · 코 · 팔 · 다리 등을 모두 갖추고 있지만 제대로 볼 수도 걸을 수도 없는 상태와 같고, 차츰 지극한 정성으로 보살펴 키우면 걸을 수도 있고 말도 할 수 있게 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그리고 얼어붙은 얼음이 곧 물인 줄 아는 것이 견성이고, 그 견성을 토대로 하여 그 얼음을 녹이는 것이 보임이며, 그와 같은 보임이 있고 난 다음에 물을 자재롭게 이용하여 식수로도 이용하고 빨래도 하고 논과 밭에 물을 댈 수도 있게 된다고 하였다.
따라서 우리 나라의 수행승들은 처음 견성한 뒤의 보임 때에 온갖 정성을 아끼지 않았다. 보임은 견성한 그것이 과연 올바른가 아닌가를 점검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이때 먼저 깨달은 고승들을 찾아가서 깨달음을 점검받게 되는데, 고승은 이때 갖가지 시험을 통하여 올바로 견성한 것인가를 살피고 견성하였음을 확인하면 깨달음을 인정하는 신표와 함께, 깨달음의 기쁨 속에 빠져서 자칫 헛된 길로 빠지기 쉬운 수행자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지침을 내리게 된다.
그 까닭은 견성하기는 하였지만 아직 그 본성에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티끌이 많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승의 인도로 이와 같은 티끌을 모두 제거하기 위하여 보임의 공부를 하는 것이다.
이때 앞서 깨달은 고승의 지도를 받는 한편 대장경을 열람하기도 하고, 깊은 산 속에서 동물들과 함께 생활하거나 시장 등의 시끄러운 곳에서 장사를 하며 선정(禪定)을 익히기도 한다. 그리고 이 보임이 어느 정도 완성되면 본격적인 중생교화의 길에 나서게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