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총(鄭摠: 1358~1397)의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만석(曼碩), 호는 복재(復齋)이다. 아버지는 정당문학(政堂文學) 정추(鄭樞)이며, 조선 개국공신 정탁(鄭擢)의 형이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이르기까지 정당문학, 예문춘추관태학사 등을 역임하였다.
2권 2책의 목판본이다. 초간본은 간송미술관, 중간본은 일본 내각문고에 소장되어 있다.
정총의 아들 정효충(鄭孝忠)이 유문을 수집, 주1하고, 강원도 관찰사 이선제(李先齊), 도사 정호연(鄭浩然), 양양부사 황보량(皇甫良)의 도움으로 1446년 간행하였다.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1585년 후손 정곤수(鄭崐壽)가 정총의 동생 정탁(鄭擢)의 『춘곡집(春谷集)』과 아들 정효문(鄭孝文)의 『판목공집(判牧公集)』, 증손 정영통(鄭永通)의 『시정공집(寺正公集)』을 부집(附集)하여 중간하였다.
상 · 하권으로 되어 있으며 상권에는 시(詩)가, 하권에는 문(文)이 실려 있다. 서문은 없고, 권말에 초간 시에 작성한 황보량의 발문이 있다.
상권에는 150제 172수의 시가 실려 있다. 시는 응제시를 권 앞에 싣고 이어 대략 시체별로 편차하였다. 시체별로는 칠언절구가 60여 제로 가장 많으며 칠언율시와 오언율시가 각기 30~40수이고 그 외에 약간의 오언절구 · 칠언배율 · 사언시로 이루어져 있다. 백성의 참담한 삶을 형상화한 시,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출처에 대한 갈등을 표현한 시, 명나라에 억류되었을 당시의 비애를 나타낸 시 등이 있다.
하권에는 서 4편, 기 2편, 교서 8편, 서 4편, 기 2편, 교서 8편, 비답 2편, 책문 3편, 비명 1편, 표전 14편, 제문 4편, 악장 2편, 가요 1편, 소 5편이 실려 있다. 서에는 정도전이 지은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과 『경제문감(經濟文鑑)』에 대한 내용과 왕명을 받고 정도전 등과 수찬한 『고려사(高麗史)』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다. 「강화입보기(江華立寶記)」는 박자안(朴子安)이 강화도에 부임하여 이룬 치적을 기록한 것이다. 강화에서 영위와 사창(司倉)을 짓고 입보(立寶)하여 군량과 생도들의 비용을 삼은 내력을 밝히고 있다.
교서에는 정몽주가 배불숭유하여 왕도를 실현하려 했던 공로를 치하하고, 더욱 바른 정치를 위해 왕의 허물을 깨우쳐 줄 것을 청한 「교문하찬성사성정몽주서(敎門下贊成事鄭夢周書)」, 천재지변이 일어나 백성이 도탄에 허덕이는 문제에 대해 의견을 구하는 「구언교(求言敎)」 등이 있다. 제문은 「본명성초제문(本命星醮祭文)」 등 초제문으로서 고려시대 도교 풍속에 관련된 글이다. 이 밖에도 고려시대 음악에 대해 알려 주는 「왕대비봉숭풍안악장(王大妃封崇豐安樂章)」 · 「국대비봉숭풍안악장(國大妃封崇豐安樂章)」 등이 있다.
고려 말, 조선 초를 살았던 정총의 사상과 문학을 살펴볼 수 있는 문헌이다.